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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EU·러 모두 그녀 미워한다…싸움닭 英외무장관이 노리는 것

미래 영국 총리를 꿈꾸는 정치인,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 지난 7일 모습이다. EPA=연합뉴스
“오늘 회담은 마치 바보와 청각장애인의 대화 같았습니다. 서로의 말을 듣긴 했지만 귀담아 듣진 않았죠.”

일국의 외교장관이 다른 국가의 카운터파트와 회담을 마친 직후 기자회견에서 할 법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 말을 지난 2월11일 모스크바에서 영국 외무장관 회담 직후 했다. 해당 외무장관, 리즈 트러스는 라브로프 바로 곁에 서 있었다. 외교장관만 18년째인 라브로프는 작정하고 트러스 장관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바보와 청각장애인”이라는 자신의 표현과 관련, 자신과 트러스 중 누가 ‘바보’이고 ‘청각장애인’인지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 올해 72세인 라브로프의 손녀뻘인 46세 트러스 장관은 그러나 강단 있게 버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한 중재자 역할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뒷모습이 보이는 인물이 트러스 장관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 트러스가 13일(현지시간) 다시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매체 톱기사를 장식했다.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 실행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북아일랜드 문제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이날 브렉시트 협정의 일환이었던 북아일랜드 협약, 즉 벨파스트 협정의 일부를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트러스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핵심 내각인 외무 장관으로 이 문제의 얼굴마담 격 역할을 떠맡게 됐다.

이번 북아일랜드 문제의 핵심 고리는 1998년 체결된 벨파스트 협정, 일명 ‘굿 프라이데이’ 협정으로,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분쟁을 매듭짓는 역할을 했다. 이 협정 체결 이전까지 영국령 북아일랜드는 ‘피의 일요일’과 ‘피의 금요일’ 사건(1972)이 연이어 발생하는 등,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아일랜드는 1949년 영국에서 독립했는데, 영국과 비슷한 종교색을 가진 북아일랜드는 영국 잔류를 결정했다. 아일랜드에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무장투쟁단체,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을 만들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영국군이 발포, ‘피의 금요일’은 약 반년 후 IRA가 일으킨 테러로 무고한 시민이 희생됐다.

이런 희생에 종지부를 찍은 게 벨파스트 협정이다. 영국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의 자유로운 통행과 무역을 보장한 이 협정으로 갈등은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해묵은 상처를 다시 헤집었다. 벨파스트 협약에 따라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에도 불구, 아일랜드에 따라 EU에 잔류하는 데, 영국이 이번에 이를 일방적으로 무력화하는 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지난 3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레, 즉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보리스 총리 부부 바로 옆자리에 앉은 트러스 장관(파란 모자, 흰색 정장). AP=연합뉴스

트러스 장관은 이날 자국 정부의 법안 제출이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실용적인 해법”이라며 “이 법안은 (우려와 달리) 벨파스트 협정을 지키고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U는 그러나 들끓고 있다. 대서양 건너 미국도 언짢은 건 마찬가지다. 미국 백악관 일일 기자회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백악관 측은 “미국은 벨파스트 협정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 관심사로 두고 있다”고 표현했다. 앞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영국이 벨파스트 협정을 흔든다면 미ㆍ영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위태로울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트러스 장관은 꿈쩍하지 않고 존슨 총리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그에게 총리와 여당인 보수당 바람막이 역할은 새롭지 않다. 트러스는 옥스퍼드의 정치인 산실로도 불리는 철학ㆍ정치ㆍ경제학(PPE) 융합 과정을 졸업했고 기업에 들어갔으나 정계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당내 기반을 다지기 위해 그가 했던 일은 현 야당인 노동당의 텃밭에 출마하는 나름의 결기를 보여준 것. 선거는 필패였으나 그는 뚝심 있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지난달 의회에서 발언하는 트러스 장관. AFP=연합뉴스

이어 그는 보수당 내 기반을 다져나갔고, 존슨 총리와 함께 개발 담당 장관 등을 거쳐 핵심 요직 중 하나인 외무장관 직에 올랐다. 외교를 유독 중시하는 영국의 특성상 외무장관은 상당한 요직이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시절 이후 여성 외무장관이 배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러스 장관은 이번 북아일랜드 건에서도 존슨 총리의 싸움닭 역할을 통해 당내 기반을 다시금 다지는 중이다. 내각 책임제인 영국에서, 당내 지지 기반은 미래 총리가 되는 고속도로 중 하나다. 그는 2000년 결혼한 남편과 사이에 두 딸을 둔 열혈 워킹맘이기도 하다.



전수진(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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