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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의 세사필담] 한국의 매력, 천시를 만나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엊그제 같은데, 프랑스 칸에서 다시 낭보가 날아들었다. 남우주연상, 감독상이란다. 한국 영화가 그 정도였나? 언론방송은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다음 날 한국의 재간둥이 BTS가 백악관을 줄지어 걸어 들어갔다. 브리핑룸을 메운 기자들에게 던진 일성은 21세기 공자(孔子)와 같았다. ‘증오와 편견이 인류의 적이다’. 그래서인지 잡음 가득한 6·1 지방선거에 세인들은 무덤덤했다. 대신 손흥민의 신기에 온통 신경이 쏠렸다. 며칠 후, 호주교포 이민지가 LPGA US오픈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국제콩쿠르에서 세 명의 낭자(娘子)가 그랑프리 소식을 타전했다.

뭔가 한국의 저력이 터져 나온 것 같지 않은가. 한류 창조 이십 수년 만에 한국의 매력이 세계를 풍미하는 중이다. 카퍼레이드라도 해야 할 판이다. 서러운 시절이 있었다. 사전오기 홍수환이 챔피언에 등극하고, 세계탁구를 제패한 야무진 체구의 이에리사가 금의환향했을 때의 카퍼레이드를 잊지 못한다. 시청광장은 인산인해였다. 세계의 인정에 굶주린 빈국(貧國)엔 국위 선양의 영웅이 필요했다. 그런데 서러운 추격자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수많은 팬덤을 홀릴 줄이야.
한국 매력이 세계를 홀릴 줄이야
단군 이래 제일대사건이라 할 것
유전자의 본질은 서민의 인류학
후속세대 살릴 양보와 후원 필요

유별난 교육열 때문일 거다. 골목길에 즐비한 교습학원, 태권도장, 피아노학원과 영어학원이 세간의 우려를 받았지만 숨은 자질과 재능을 일깨워줬음을 인정해야 한다. 극성 엄마는 교양 시민을 길러낸 일등 공신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전집류가 좁은 거실벽을 채웠고, 그림책과 동화책이 아이들 방에 즐비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괜히 나왔겠는가. 상상력도 경쟁과 열정으로 깨어난다. 하마터면 유실될 뻔한 문화 유전자가 드디어 천시(天時)를 만난 것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 천상 재회가 일어났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살아 있다면 ‘단군 이래 제일대사건’이라 칭송하지 않았을까. 단재 선생이 연해주와 요하를 두루 다니면서 발품을 판 것은 조선 혼백의 물증을 찾기 위함이었다. 선생이 목격한 단군조선과 고구려의 장대한 기백은 『조선상고사』로 응결됐다. 필자는 압록강변 지안(集安) 고구려 고분벽화 앞에 섰던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지하 고분은 서늘했고 벽화는 황홀했다. 사신(四神)이 구름처럼 나는 각 방위의 천정에 용이 긴 꼬리를 서로 물고 춤을 추고 있었다. 천상의 음악이 울리는 듯했다. 선조들이 투사했던 욕망의 예혼(藝魂)이 2천 년 뒤 후손들에게서 이렇게 터져 나온다면 ‘단군 이래 제일대사건’이라 해도 선생은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자민족 중심 해석이 아니다. 한국의 초라한 지방색을 보편적 차원으로 끌어 올린 선각자가 있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 선생은 발상 전환적 사고를 통해 우리의 생활양식과 습속을 돌아보게 했다. 화전민 인류학이다. 뒤집어보니 우리 문물은 지혜의 결정체이자 이야기의 보고(寶庫)였다. 역사의 고난, 삶의 애환은 이야기를 낳는다. 할머니는 얘기꾼, 군중에게 얘기를 해주고 먹고살았던 전기수(傳奇叟)가 활약한 나라다. 그 처연하고 애틋한 이야기들은 일찍이 춤과 판소리로 발현됐고 급기야 영화, 소설, 패션, 푸드, 뷰티의 기본 정서로 스며들었다. 서양 문화가 부르주아의 산물이라면, 한국의 저력은 서민적인 것이다.

산과 강의 나라 한국. 산하(山河)가 역사적 시련을 맞으면 이야기와 예술을 잉태한다. 서양엔 귀족이 파트론이었지만 한국에는 무명의 촌락민이 주역이자 후원자였다. 수천 개의 산(山)과 수만 개의 촌락에 겹겹이 쌓인 비탄, 시련, 애증의 퇴적이 스토리 씨앗을 움터 내는 것이 한국문화, K컬처의 요체다. 영화와 드라마는 성질 급한 몇 개의 씨앗이 일찍 꽃을 피운 것일 뿐이다. 일본발 트로트가 한국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서양발 팝송이 BTS와 블랙핑크에게서 참신한 감성을 되찾는 것도 그러하다.

일본 문화가 각광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날생선을 먹지 않는 서양에 스시가 상륙했고, 아기자기한 J양식이 정교한 전자제품과 함께 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1980년대 일본학 강의실엔 수백 명이 몰렸다. 한국은 일본의 추종자로 간주됐다. 그런데 일본의 매혹은 곧 수그러졌다. 너무나 일본적이었다. 글로벌 서민들이 공감할 저항, 울혈, 생존의 끈질긴 매력이 없었다. 권력자가 둘러친 높은 성곽보다 한국의 낮은 돌담이 더 정겨웠다. 이날치와 앰비규어스의 ‘범 내려온다’처럼 미국의 대중적 비트음악인 힙합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문화굴기를 외치는 중국이 한국의 질주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사십여 소수민족은 고립된 섬, 전체주의적 통치가 서민 정서의 발현을 아직은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은 중화 둥지에 세계 문명이 깃든다고 포효했다. 한국은 수만 개의 소조에 핀 해학의 스토리를 세계로 날려 보낸다. 마침 서양의 대중문화와 예술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K컬처가 천시를 만났다. 어떻게 가꿔나갈까. 베이비부머와 586세대가 후속 세대에 무한히 양보하고 무한히 후원할 밖에.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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