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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그림자 덮친다, 증시 '검은 월요일'…하루에 88조 증발

코스피가 미국의 물가 충격 등의 여파로 큰 폭으로 하락한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지난달 12일 기록한 기존 연저점(2,546.80)을 뚫은 데 이어 종가 기준 2020년 11월 13일(2493.9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다가오는 거인의 그림자에 증시가 ‘검은 월요일’을 맞았다. 커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 속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우려가 커지면서다. 호된 '긴축 발작'을 앓은 국내 증시에선 하루 만에 88조원이 증발했다. 코스피는 3.5% 급락하며 2500선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주가·원화가치·채권값이 모두 밀리는 '트리플 약세'를 기록했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52% 내린 2504.51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지난 2020년 11월 13일(2493.97)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밀렸다. 급락 폭(-3.52%)도 올해 들어 최대다. 코스닥 하락 폭은 더 컸다. 이날 코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4.75% 내린 828.77에 장을 마쳤다. 이날 하루 코스피(71조원)와 코스닥(17조원) 시가총액이 총 88조원 줄었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0개 중 99개의 주가가 하락했다. 52주 신저가 종목도 속출했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2.66% 내리며 올해 들어 가장 낮은 6만21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네이버(-5.93%)와 카카오(-4.49%), 카카오페이(-10.22%), 카카오뱅크(-8.05%), 하이브(-10.96%), SK바이오사이언스(-6.61%) 등도 줄줄이 하락하며 52주 저점을 경신했다.

지수를 1년 6개월 전으로 되돌린 건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폭탄'이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4956억원, 2175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개인만 홀로 6676억원을 사들였다. 일본 닛케이 255(-3.01%)와 홍콩 항셍 지수(-3.41%), 대만 자취안(가권) 지수(-2.36%),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0.89%) 등 아시아 증시도 모두 하락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긴축 발작은 증시만 뒤흔든 건 아니다. 주가와 원화값, 채권값이 모두 떨어지는 '트리플 약세'를 보였다. 외국인이 주식을 던지며 원화가치도 고꾸라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15.1원 하락(환율 상승)한 달러당 1284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채권 금리도 치솟았다(채권값 하락).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239%포인트 오른 연 3.514%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2012년 3월 14일(연 3.5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최고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연 3.654%)도 지난 2014년 1월 23일(3.656%) 이후 8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암호화폐 시장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황 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3일 오후 4시 10분 기준 비트코인은 24시간 전보다 7.81% 내린 2만532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한때 2만5000달러선도 깨지며 2020년 12월 이후 최저가를 나타냈다.
한미 기준금리추이 인상시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 Fed ·한국은행]
금융 시장이 이처럼 요동친 건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 압력 때문이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8.6% 급등했다. 시장 예상치(8.3%)를 웃도는 수치로 지난 1981년 12월 이후 약 41년 만에 최고치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 3월(8.5%) 이후 '피크 아웃(정점 통과)' 분석이 많았지만, 이번에 고점을 새로 쓰며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치솟는 국제 유가도 물가에 기름을 붓고 있다. 다소 진정되는 듯했던 국제 유가는 지난주 다시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에너지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기 전까지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 인상과 자산 축소를 멈출 수 없다”고 분석했다.

커지는 물가 압력은 Fed를 더 자극할 수밖에 없다. 오는 14~15일(현지시간)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긴축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을 수 있다는 우려에 시장이 긴장 모드에 접어든 이유다.

당초 이번 달과 7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빅스텝)씩 인상하고, 미국 중간선거(11월)를 앞둔 오는 9월부터는 0.25%포인트씩 올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물가 압력이 더 커지면서 자이언트 스텝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월가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와 제프리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이번 FOMC에서 Fed가 빅스텝이 아닌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Fed가 이번 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 앨런 그린스펀이 Fed 의장을 지냈던 1994년 11월 이후 첫 대규모 금리 인상이다.


로저 퍼거슨 전 Fed 부의장은 지난 10일 미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이번 FOMC에서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것 같지만, 기자회견에서는 0.75%포인트 인상 카드가 앞으로 테이블에 올라 있다는 식으로 더 매파적으로 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자이언트 스텝의 시점을 다음 달 이후로 예상한 것이다.


무기한 빅스텝 예상까지도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이 결정적으로 하락하는 징후가 보일 때까지 Fed가 무기한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Fed가 고강도 긴축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금리 인상은 과수요를 억제해 물가를 통제하는 것인데 현재 인플레이션은 공급 측면에서 기인한 성격이 강하다”며 “Fed가 고강도 긴축을 한다고 (물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긴 어려운 만큼 시장 상황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태윤(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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