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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나답게"…가수→변호사 이소은의 '주체적으로 일하는 법'

Editor's Note
10~20대 초반 가수로 살았던 이소은씨는 20대 중반 미국 로스쿨에 도전해, 변호사로 30대를 보냈습니다.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의 미국 뉴욕지부 부의장으로 일하기도 했죠. 일을 잘하고 싶었던 그는, 일주일에 90~100시간씩 일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에 매몰된 것처럼 살던 어느 날, 이소은씨는 책 『딥 워크』를 읽고 ‘나의 방향성에 맞는 길’을 찾기로 결심합니다. ‘주체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삶을 정리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남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보낸 이메일밖에 없을 것’이라는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40대가 되기까지 이어간 도전을 에세이『지금의 나로 충분하다』에 녹여냈는데요. ‘창작자 겸 변호사’ 이소은씨를 비대면으로 만나, 그동안 어떻게 자기만의 정점을 만들어 왔는지, 물어봤습니다.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피크 메이커” 2화 중 일부입니다.

책 출간 후 대학로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하는 이소은. 그는 ″책 이야기와 노래까지 겸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어 마음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이소은

이소은이 북토크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Q. 책 출간 후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한 달 정도 한국에서 홍보 스케줄을 소화했어요. 폭풍 같았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고 버텼지만, 미국에 돌아와서 컨디션이 무너졌어요(웃음). 하지만 기분 좋은 아픔이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한국에 간 것도 오랜만이었고요. 북토크를 하면서 많은 분이 삶에 대한 열정을 품고 고민하며 산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책에서 '고유함'을 강조했었는데, 이 내용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해주셔서 제가 쓴 내용을 깊이 되새길 수 있었어요.

Q.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었나요.
딱 하나만 뽑긴 어렵지만, 많은 분이 아래의 질문을 하셨어요. 뉘앙스만 다르게요.

"두려울 때 나아가는 원동력을 어떻게 찾나요?"

대학생은 물론, 40대 후반의 직장인까지 공통된 질문이었습니다. 두렵거나 좌절되거나, 어떤 길목 앞에 섰을 때 전진할 수 있는 저만의 비법을 물어보셨죠. 하지만 잘 아실 겁니다. 비법은 없죠(웃음).

Q. 에디터로서도 자주 던지는 질문입니다(웃음). 어떻게 답하셨나요?
그래서 "똑같은 답을 드릴 것 같은데, 어쩌죠…"라면서 이 이야기를 했어요.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은 '액션(행동)'에서 나온다고요.
그러면서 이 답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제가 변화를 택한 경험을 나눴죠. 당연히 저도 새로운 선택을 할 때마다 두려웠습니다.

미국으로 넘어와 로스쿨 졸업 후 로펌에 취직했을 때도 비슷했어요. 동료 변호사 중에선 주니어 시절부터 차근히 성장해 나중에 정치인까지 되겠다는 그림을 그린 이도 있었죠.

제 마음은 조금 달랐습니다. '일단 배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되, 로펌에서 평생 일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파트너급으로 성장하는 변호사를 보면 존경스럽지만,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았어요. 계속 “나는?”이라는 물음이 남아있었습니다.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렸어요.

‘업무로든, 네트워크로든 나를 확장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하자. 그런 액션을 하자’고요. 그래서 다른 로펌이나 사내 변호사, 국제기구 등으로 이직하는 방법도 알아봤어요. 프로 보노*도 맡고, 비영리 단체 참여도 하기 시작했어요.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였고요.

*프로 보노(Pro Bono) : 미국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
그러다 연이 닿은 곳이 국제상업회의소였습니다. 운 좋게 중재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죠. 그렇게 새로운 커리어를 열어갔습니다.

Q. 중재법원에서 일한 경험은 어땠나요?
수많은 문화권·배경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매일 소통하고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다양한 나라를 가봤고, 큰 조직에서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내는 방법을 많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할 수 있었죠.

많은 걸 배웠지만, 동시에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점도 있었어요.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보니, 관료주의가 있었습니다. 대신 안정적이었죠.

하지만 제 성향이 여기에 맞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저는 위에서 전달받은 업무를 이행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어요.

한창 일하던 중 미국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칼 뉴포트의 책 『딥 워크』를 읽었어요. 지금은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요. 책 속 문장 중 ‘깊이 집중해 일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삶을 정리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남는 것은 여러 사람에 보낸 이메일밖에 없을 것이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너무 제 이야기 같았어요. 중재법원 3년 차가 됐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중재법원에 있는 동안 열심히 배우되, 내 방향과 일치하는 길을 계속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4년 차가 됐을 쯤, 갭이어(gap year)를 택했습니다.


이때 저는 갭이어를 이렇게 소개하곤 했어요. "스스로 부여한 안식년"이라고요. 물론 이 결정을 하고 코로나 19가 터질 줄은 몰랐지만요(웃음).

팬데믹 속에 보낸 갭이어였지만, 돌이켜 보니 정말 중요한 시기였어요. 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예요. 단순히 너무 피곤해서 쉬자는 게 아니에요. 제가 살아야 하는데 살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쉼을 통해 재점검했다는 겁니다. 방향을 다시 잡고 의도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과정이었죠.

이때 마침 출산을 하고, 부모가 된 인생의 큰 전환점도 맞이했어요. 커리어뿐 아니라 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죠.
갭이어를 보낼 당시 이소은의 모습.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여행을 다니며 글을 썼는데, 이후에는 집에서 주로 지내서 사진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이 시기를 통해 삶을 재점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소은

"변화를 알아채는 감각, 예민함에서 나왔다"

Q. ‘변화가 절실하다’는 걸 아는 감각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예민해요. 이번에 북토크를 위해 최인아책방에 갔을 때 최인아 대표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소은씨는 자기 자신이 큰 사람 같아요”라고요.

처음 말씀해주셨을 때는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요?"라며 농담으로 서로 웃었는데, 저는 최 대표님이 저를 옳게 보셨다고 생각해요. 제 중심에 저 자신이 매우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거죠.

저는 제가 하는 모든 경험을 저랑 연결해보는 습관이 있어요. 예민하게 아는 거죠.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라며 스스로 묻는 겁니다.
직업과 커리어를 볼 때도 비슷해요. 진부한 말이지만 지금 우리 세대는 7번 직업을 바꿀 수 있는 세대라고도 하잖아요. 한 직장과 같은 부서에서 오래 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음식에서도 신선함이 중요하듯, 일에서도 신선함이 중요하니까요.

물론 한 자리에서도 신선함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달리 말하면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리를 빠르게 옮길 수도 있고요. 또는 오래된 자기 자리를 신선함으로 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Q. 커리어적으로 나름 정점을 경험했으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걸까요.
그렇진 않아요. 사실 제가 정점을 만드는 '피크 메이커'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어떡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정점을 찍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뭘 해도 늘 '중상' 정도 해냈죠.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제게는 나름의 강박감이 있었어요.

특히 가수를 내려놓고 변호사에 도전했을 때 스스로 정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유는 좀 더 복합적인데요. 한국에서 쌓은 커리어와 네트워크, 가족과 지인을 두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내려놓음'이 억울하지 않으려면, 정점을 찍어 꼭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저를 갉아먹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앞서 소개한 시간을 겪으면서 스스로 정리했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갔습니다. 팬데믹도 영향을 줬고요. 그렇다 보니 산을 타듯 올라가다 쉬었다가, 내리막도 걸었다가, 계속 움직이면서 끝까지 지속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더 베스트(The best)’가 아닌 ‘마이 베스트(My best)’가 되고 싶었던 거죠.
이소은은 ″저는 피크 메이커라기보다 피크 메이커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Unsplash

그래서 저는 '피크 메이커가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단, ‘마이 베스트’처럼 ‘마이 피크(My Peak)’를 목표로 하는 거죠.
이 관점에서 제가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단순해요. 재밌고, 배울 수 있는 걸 하자.

중요한 건 재밌는 걸 하는 것과 쉬운 걸 좇는 게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고생 끝에 만나는 꿀 같은 짧은 재미를 겪을 때 저는 의미를 더 느끼는 것 같아요. 성취감에 취하는 거죠. 재밌는 걸 하는 데에는 고생이 늘 동반돼요. 제가 두려울 때마다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요. "내가 언제 이런 걸 또 해보겠어?"에요. 그 질문의 답이 "지금 아니면 못한다"가 되면 하는 거죠.

성취감은 꼭 커리어를 선택하는 데서만 오는 건 아니에요. 저는 창의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아티스트만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분야든 창의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중재법원에 있을 때도,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업무가 많았는데요. 반복된 업무 속에서도 나만의 색을 입힐 방법을 고민했어요. 튀는 것과는 다릅니다. 나만의 ‘플러스 알파(+a)’를 더해 즐겁게 일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가 재밌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하면 결과도 좋게 나오더라고요.


창작자·변호사의 일 모두 겪으며 깨달은 것
미국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한 '뮤직 바이 더 글래스' 행사 장면. ⓒ이소은
Q. 감성이 중요한 창작자(가수, 작가)와 이성이 앞서는 변호사로 일할 때의 생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양쪽의 일을 모두 잘해낼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너무 다른 극과 극 직업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둘의 공통점이 있다고 봐요. 창작자와 변호사의 가장 큰 공통점은 둘 다 ‘관계 맺기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어린 나이에 가수로 활동했던 것이 분명 추후 변호사를 하며 소통하고 설득하고 관계를 맺을 때 도움되는 요인이 됐어요.

반대로 다르면서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저는 '역할 스위치가 힘들었다'고 표현하는데요. 아티스트로 일할 때는 저를 통해 예술적인 것과 콘텐트가 나오기에 상품·활동의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잖아요. 변호사의 중심에는 내가 아닌 클라이언트와 사건이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제게 돌아오던 때와 달리 변호사로 일하면 열심히 할수록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일이 되죠. 물론 좋은 것이지만 처음에는 이 본질적인 부분에서 상실감을 느꼈어요. 이전 직업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변호사로도 일해봤기에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내재화할 수 있었어요. 자칫 빠질 수 있는 거만함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가 한 노력을 올바르게 인정하는 법을 알게 된 거죠. 내가 중심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돌이켜 보면 이 두 경험을 모두 해본 것이 제게 큰 강점이 됐습니다.

가수에서 로스쿨로 새로운 커리어를 택한 계기도 마찬가지였어요. 과거의 제가 감정이 풍부하고 기복이 심하다는 걸 알았기에, 이성적인 영역을 채워보고 싶었거든요.

Q. 주인공에서 주변부의 일을 한 사람보다, 주변부에서 주인공을 꿈꾸는 분들이 더 많은데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그런 케이스가 더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수에서 변호사에 도전할 때는 저항이 많았어요. 스스로 주인공에서 주변으로 밀려난다는 상실감이 있었죠.

반대로 주목을 덜 받는 일을 하다가, 자신이 뭔가 만들어 도전하는 건 더 열정적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 방향은 찬성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건 있어요. 창작자 또는 주인공이 되려 할 때 나의 커리어 방향과 맞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창작자들의 영역은 흐름에 휩쓸리기 쉽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책을 내고 한 달간 여러 방송에 나온 것도 일시적인 거죠. 붕 뜨는 기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상실감이 생기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마음의 뿌리가 매우 중요하죠. 저도 오랜 경험과 실패를 겪으면서 이런 휩쓸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됐어요. 변호사 커리어를 가진 것 역시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Q. 실패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뭔가를 시도해서 실패하는 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컴퓨터에 저의 ‘실패 이력’ 문서가 있는데요. 새로운 걸 도전했다가 안 되면 하나씩 더하는 문서죠. 이걸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몇 년 뒤에 읽어보면 재밌어요.

본업에서의 여러 이직 실패 경험뿐만 아니라, 사이드 프로젝트 중 대표적으로 저는 토크쇼도 만들어보고 싶어서 제가 MC를 맡고 대본을 쓰고, 섭외하고, 제작까지 해 봤어요. 하지만 파일럿만 찍고 잘 안 됐죠. 모 언론사에 섹션을 맡아서 기고를 해보려 연락을 주고받다가 무산된 적도, 직업 관련 다큐멘터리 시리즈 기획을 하고 피치 했다가 안 된 적도 있어요.
이소은이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실패할 때마다 업데이트한다는 '실패 이력' 문서. ⓒ이소은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기록을 쌓고 나면 "안 된다. 절망스럽다"가 아니라 "한번 해봤네?"라며 오히려 자신감이 올라가요.

"이래서 안 돼"가 아니라 "해봤으니 이걸 바꾸면 더 잘되지 않을까?"가 되죠. 더 보완해서 다시 시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죠. (후략)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피크 메이커” 2화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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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정점’을 끊임없이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일할까요? 어느 한 분야의 최고가 된 것에 멈추지 않고, 정점을 계속 찍어 나가는 ‘피크 메이커(Peak Maker)’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나의 일·커리어를 키우는 방법을 고민하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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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인(folin@foli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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