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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타들어가는 땅

김완신 논설실장

김완신 논설실장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1930년대 배경의 가난한 소작농 톰 조드 일가 이야기다. 대공황과 중서부 대평원 가뭄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조드는 캘리포니아 이주를 결심한다. 조드가 살던 오클라호마는 콜로라도, 캔자스, 텍사스, 뉴멕시코 등과 인접한 평야 지대다. 모래폭풍이 자주 발생해 ‘더스트 보울(Dust Bowl)’로 불렸던 곳이다.  
 
1930대 초반 이 지역에 최악의 가뭄이 몰아쳐 4년간 계속됐다. 경작지 난개발로 습지는 사라지고 관목은 제거돼 땅은 물을 품지 못했다. 여기에 장기간 가뭄이 덮쳐 일대의 마른 표토가 바람에 날리면서 거대한 모래폭풍이 지역을 강타했다. 농장 지대는 경작이 불가능한 황무지로 변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가뭄 중 하나다.  
 
소설 ‘분노의 포도’ 앞 부분에는 하늘을 꺼멓게 가린 흙먼지를 묘사한 대목이 자주 나온다. 주민들은 뜨겁고 따가운 공기에 타들어가는 옥수수 밭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거친 땅은 1930대 후반 가뭄이 해소되면서 농지로 돌아왔다.  
 
이 시기에 20만 명이 넘는 주민이 가뭄을 피해 캘리포니아 등 서부로 이주했다. 조드 일가의 이주는 대공황기의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었지만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만든 가뭄도 이유가 됐다.  
 


현재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2000년 시작된 가뭄은 20년 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0년간 최악의 가뭄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물 부족 사태로 강제절수령이 내려졌다. LA시는 지난 1일부터 야외 물 사용을 주 3회에서 2회로 제한했다. 주거용수의 70%를 차지하는 야외용 물을 절약하기 위한 조치다. 절수령 목표는 사용량의 35% 감축이다.  
 
주민들에게 물 절약을 당부하고 있지만 사용량은 오히려 급증했다. 캘리포니아 수자원관리국의 7일 발표에 따르면 LA를 포함한 남부 해안지역의 지난 4월 물 사용량은 2020년과 비교해 25.9% 늘었다. 이 지역은 가주 전체의 절반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다.  
 
최근 CNN방송은 중가주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게리 빅스 일가를 인터뷰했다. 장기간 가뭄으로 농장에 파 놓은 우물은 10년 전부터 물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물탱크의 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물 맛은 형편 없다.  
 
농장은 물이 없어 경작이 어려운 상황이다.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도 부족하다. 먹고 씻을 물은 아들과 손녀가 타운에 나가 가져오고, 세탁은 물을 구할 수 있는 인근 도시로 나가 해오고 있다.  
 
2000년 이후 캘리포니아 강수량은 크게 줄어든 반면 지구온난화로 평균기온이 높아져 증발되는 물의 양은 오히려 늘었다. 이전과 같은 강수량에도 물은 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물 절약에 대한 인식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빅스는 “가뭄과 물 부족 사태로 농장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다”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농토는 황무지로 변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지금 72세인 그는 자신의 10대 때를 회상한다. 당시 가족이 운영하던 과수원에는 오렌지와 피칸 나무가 풍성하게 자랐고, 그의 아버지는 넓은 땅에서 알팔파를 키우며 소와 양을 방목했다.  
 
그런 땅에 지금은 흙먼지만 날리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곡창에 더 이상 농산물을 재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을 우려한다.  
 
소설 ‘분노의 포도’의 조드가 가뭄 재앙을 피해 오클라호마를 떠나 이주해 온 곳이 센트럴 밸리다. 빅스 일가의 농장이 위치한 지역이다. 넓은 평야에 펼쳐진 비옥한 땅, 시에라 산맥의 눈 녹은 맑은 물… 90년 전 조드 일가는 센트럴 밸리의 들판에서 새 삶을 기약했었다. 그 땅이 지금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김완신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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