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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구 방화 용의자, 월셋방 얻어 전입한 '원정 소송러'였다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변호사사무실 방화 사건 용의자는 소송을 위해 대구지역 임시 거처에서 머물러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불을 지른 변호사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변호사와 재개발투자 관련 소송으로 얽힌 오랜 악연이 있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9일 오후 A씨가 거처로 삼고 있던 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 출입문은 폴리스라인으로 봉쇄돼있었다. 인근 주민 말을 종합하면 50대인 A씨는 4년쯤 전에 이 아파트에 52.9㎡(16평) 크기 월세방을 얻어 전입을 왔다. A씨가 사는 아파트 주민은 “(A씨가) 아파트 단지에서 자주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본가는 다른 지역에 있다. 소송 등 사건에 휘말린 것이 많아 일을 볼 때만 이곳에 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몇몇 소송 기일이 잡히는 기간 동안 법원과 가까운 이 아파트에 머물렀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또 다른 주민은 “평소 A씨는 이웃과 교류를 하지는 않았지만 늘 바빠 보였다”며 “뉴스를 접하고 크게 놀란 주민이 많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는 “CCTV를 통해 A씨가 아파트를 나선 시각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현재 진행 중인 민사소송과 관련해 앙심을 품고 상대방(피고측) 변호사사무실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변호사회도 A씨가 일부 소송에서 패소한 뒤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A씨가 진행 중이던 수억 원대 투자 반환금 소송이 이번 방화 사건의 발단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지법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월 한 재개발사업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같은 해 6월 패소했다. A씨는 곧바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오는 16일 변론기일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A씨가 소송을 제기한 피고 측 소송대리인이 이번에 방화 사건이 발생한 사무실의 변호사였다.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변호사 사무실 빌딩에서 불이나 시민들이 옥상 부근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A씨와 재개발사업 시행사 대표 B씨와의 투자금 반환 소송의 발단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축공사업, 주택사업 시행업, 분양대행업 등을 설립한 업체 대표인 B씨는 2013년 2월 대구 수성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신축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시행하기로 하고 2013년 11월 A씨와 투자약정을 체결했다.

A씨는 이후 2014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시행사에 3억6500만 원을 지급했다. 이보다 앞서 투자했던 3억2000만 원까지 합치면 A씨의 총 투자금은 6억8500만 원이었다.

이후 A씨가 투자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자 B씨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투자금 반환 소송을 진행해 투자금과 지연손해금을 반환받는 내용의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대구변호사회 등에 따르면 당시 소송은 이번에 문제가 된 민사소송과는 별개의 사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법원 뒤 건물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진 가운데 경찰과 소방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A씨는 일부 승소판결에도 제대로 투자금을 반환하지 못하자 지난해 4월 B씨를 상대로 다시 민사소송을 걸었다. “B씨가 시행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만큼 B씨가 A씨에게 8억2000여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이었으나 A씨는 패소했다.

A씨가 이날 불을 지른 변호사사무실은 소송 당시 피고인이던 B씨 측 변호사가 근무하는 곳이다. 이 변호사는 A씨가 불을 지를 당시 경북 포항시에 출장을 가 있어 화를 면했다.

대구 지역 법조계는 경찰이 ‘보복성 테러’로 추정하는 사건을 두고 충격에 휩싸였다. 이석화 대구시변호사회장은 이날 오후 사망자의 시신이 안치된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들러 “이번 사건으로 변호사들이 크게 충격받았다”며 “재판 패소 후 원한이 생기지 않도록 지원·상담을 해주는 제도 등을 정부와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대구변호사회 측은 이번 사건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방화 용의자의 재판을 담당했던 변호사와 이야기했는데 소송에서 일부 패소한 뒤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고 들었다”며 “가해자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피해자들이 (경제적인) 구제를 받기가 아마 어려울 것 같은데 검찰의 범죄피해자 구조제도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시변호사회 측은 유족들에게 변호사회 합동장으로 장례를 치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유족들이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화재 때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이 회장의 변호사 사무실도 해당 건물 4층에 있다. 이 회장은 “화재가 났다고 직원이 외치고 나서 1~2분 안에 연기가 순식간에 차올랐다”며 “직원들과 문을 잠그고 대피해있으니까 소방관이 와서 구해줬다”고 말했다. 이날 불로 이 건물에서 근무하던 변호사 1명과 직원 5명이 참변을 당했다. 방화 용의자인 A씨를 포함해 모두 7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A씨가 변호사 사무실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인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경위를 조사 중이다. 또 대구경찰청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한 수사전담팀을 편성해 집중 수사에 나선 상태다.




김정석.서진형.백경서.김민주(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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