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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빚 허덕일때 폭리 누리는 은행...그뒤엔 '뒷짐진 세력' 있다 [박가분이 고발한다]

그래픽=김현서
시중은행의 과도한 이자장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올해 1분기 4대 금융지주회사가 4조 6000억 원 넘는 순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순이익도 역대급이었다. 이를 토대로 금융권의 성과급 잔치가 벌어졌는데, 코로나 19 위기에 이어 급등한 대출금리에 허덕이는 서민과 청년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자 폭리 논란이 잇따르자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최근 대출금리 상승 등에 대한 설명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대출금리 상승은 글로벌 긴축과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게 요지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인상을 ‘핑계’로 은행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불만 섞인 눈총은 여전하다. 그럴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예대 금리(잔액 기준) 차이는 3.28%포인트를 기록했다. 2019년 3월 이후 최대치다. 금리 올랐다고 비싸게 돈 빌려주면서 예금이자는 찔끔 올리는 시늉만 했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예대 금리차의 주기적 공시를 의무화하고 금융 당국이 이를 점검하도록 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국회에서도 예대 금리차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정부가 개입하도록 하는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정치권 압박이 본격화하자 비로소 은행들은 부랴부랴 기준금리 인상에도 꿈쩍 않던 예·적금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러니 국민들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국민은 빚에 허덕이는데 은행 배만 불려
특히 가파른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은 내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계층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지난 2월 주택담보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3.88%로, 2013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가계부담은 더 크다. 사회초년생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서 ‘금리가 미쳐 돌아간다’ ‘예금이자도 (대출이자만큼) 더 올려라’는 항의성 게시글이 잇따르는 이유다. 급기야 윤 대통령 취임 전엔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진행되는 은행의 가산금리 폭리를 막아 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시중은행이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빌미로 가산금리는 올리면서 우대금리는 축소하는 방식으로 폭리를 취했다는 지적을 그저 대중의 볼멘소리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가계대출 축소를 위해 은행권의 과도한 이자수익에 눈감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 지 오래다.
지난해 11월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청원 캡처]
한국의 시중 은행들은 (재벌 대기업과 더불어) 정부 주도의 관치금융 덕에 성장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역사와 무관하게 은행업 자체가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진입할 수 있는 독과점시장이다. 금리문제만큼은 ‘시장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둬야 한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기왕 은행 금리 폭리와 관련한 논란이 일어난 김에 ‘금융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는) 기업대출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편승해 가계대출 비중을 늘리며 손쉬운 돈벌이에 치중한 금융권과 이를 방조한 금융당국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은행 폭리 빌미 준 기준금리 인상
한편 은행의 폭리 이면에는 경제정책 수단을 기준금리 조정에만 (속된 말로) ‘몰빵’해온 잘못된 정책 관행도 있다. 물가상승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게 은행들에 빌미를 준 측면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최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금리정책에만 의존하는 거시경제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본격적 고찰은 없다. 국내에선 은행 폭리를 비판하는 측도 물가조절을 위해선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 해외에서는 금리 인상 여부와 속도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논쟁’ 거리이다. 가령 미국에서는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연합뉴스]
금리정책에만 의존하던 관행이 최근 비판받기 시작한 건 인플레이션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부터다. 인플레이션은 수요견인(demand-pull) 요인뿐만 아니라 비용압박(cost-push) 요인이나 분배 갈등의 결과로도 나타난다. 어떤 요인이 촉발한 인플레이션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정책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른바 통화주의(monetarism)를 맹신하던 시기에는 경제 당국이 고용·분배보다 오로지 물가안정만을 중시해 공격적인 금리정책을 펼쳤다. 여기에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본다. 인플레이션 완화라는 미명 아래 금리 인상으로 고용과 투자를 위축시키는 등 실물경제를 망가뜨린 탓이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다. 게다가 그러한 금리 인상으로 배를 불린 것은 (우리나라의 최근 은행권 이자 폭리 이슈에서 볼 수 있듯) 소수 금융자본뿐이었다. 이제 미국에서는 물가 잡는다며 실업자를 양산한 과거 정책에 대한 반성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이와 관련한 활발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금리 인상을 단행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예전보다 속도 조절에 더 신경을 쓰는 모양새이다.
물가 잡기엔 너무 ‘게으른’ 금리 인상
현재 전 세계가 겪는 물가위기는 공급요인이 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중국의 코로나 셧다운, 기후변화와 맞물린 에너지 위기, 전 세계 공급망 교란 및 물류의 병목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식량, 기초 원자재, 에너지 그리고 특히 생필품에 대한 수요는 아무리 금리를 인상한다 한들 억누를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업들은 금리 부담을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에 전가하려 할 수 있다.
금리를 인상한들 앞서 언급한 공급자 측 제약요인이 풀리지 않는 한 물가를 잡지 못하는 건 물론이요, 앞서 보았듯이 은행과 금융자본에 유리한 분배 왜곡을 가져오고, 대출부담·경기후퇴·고용위축을 통해 취약계층과 서민 가계만 더 괴롭힐 뿐이다. 물가대책으로서 더 시급한 건 금리 인상이 아니라 물류와 공급망의 취약점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뒤에 숨어 폭리를 챙기려는 기업과 투기세력을 견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미국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당)은 원자재·식품 판매기업의 과도한 가격 인상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규제는 글로벌 차원에서 실행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에 한국 정부 역시 당사자로서 논의를 선도해야 한다. 물가대책으로 ‘금리 인상’에만 의존하는 것은 정책당국과 정치인들의 무능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중앙 포토]
마지막으로, 물가안정 목표를 완전고용과 분배의 형평보다 우위에 두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재고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서민 입장에서 진짜로 두려운 것은 인플레이션 자체보다 일자리의 상실과 (노동) 소득의 위축이다. 적절한 분배와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협상력 강화로 가계소득을 확충할 수 있다면 인플레이션 그 자체는 공포가 아니다. 반대로 급격한 금리 인상 충격은 분배구조를 왜곡시키고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금리정책을 ‘원 툴’로 사고하던 시대는 서구 선진국에서부터 이미 끝났다. 보다 다양한 정책수단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가분(c_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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