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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도 모르는 개딸…이재명 측 일각 "도움 되지만 불안" [위기의 민주당]

#.1 지난 5일 인천 갈산동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역 사무실 입구엔 “나잇값 못하는 노망난 할배”라고 적힌 3m 길이 자필 대자보가 붙었다. 지방선거 패배 후 대표적 친문(친문재인) 인사인 홍 의원이 ‘이재명 책임론’을 주장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에는 “홍 의원의 개소리를 듣고 사랑과 존경이 차올라 편지를 쓰게 됐다. 근처 여시(여성시대 회원)들도 한 번씩 들러서 사랑의 편지를 붙이길 추천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홍 의원 주변에선 “대자보 게시자로 추정되는 이의 글”로 짐작하고 있다.
6ㆍ1 지방선거 참패와 관련해 '이재명 책임론'을 꺼내든 친문재인계(친문계) 핵심 홍영표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에 홍 의원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6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에 따르면 3m 길이의 대자보에 "치매가 아닌지 걱정된다"는 내용과 함께 치매센터 번호가 쓰여있는 등 홍 의원을 조롱하는 글이 적혀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 이재명 의원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전략공천이 확정된 지난달 6일엔 여성시대 등 복수의 커뮤니티에 비대위원들의 전화번호와 함께 “오후 3시 문자 총공(총공격)”이란 글이 올라왔다. 실제 오후 3시를 기해 비대위원들에겐 “지방선거 패배하면 비대위 책임이지, 이재명에게 떠넘길 생각 말라”는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지난달 6일 이재명 의원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전략공천이 확정된 직후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이 받은 문자(왼쪽)와 지방선거 패배 후인 지난 2일 받은 문자. 전직 비대위원 제공

3ㆍ9 대선 이후 개딸(개혁의 딸)이 민주당을 집어삼키고 있다. 대선 후 이 의원 지지를 선언하며 민주당에 입당한 2030 여성을 일컫는 ‘개딸’은 이 의원의 신흥 팬덤이다. 개딸로 상징되는 당 밖의 강경파 팬덤에 당 전체가 휘둘린 것이 지방선거 패배 등 민주당의 위기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6ㆍ1 지방선거를 전후해 민주당 친문 의원실로 들어온 팩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를 사용했다. 친문 의원실 제공

개딸들의 폭력적 배타성에 대한 증언은 민주당 주변에서 흘러넘친다. 홍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문자 폭탄은 과거에도 받아봤지만, 개딸은 문 앞까지 찾아와 물리적 위협을 가해 더 무섭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문 의원실 보좌진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팩스를 하루에 수십장씩 보내는 것도 개딸들의 수법”이라며 “잉크값이 엄청 들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비대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선거 전부터 ‘이재명 책임론’을 집단으로 방어하는 것을 보고 시나리오를 쓰는 조직적 세력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민주당 좌지우지 개딸…문파보다 강한 ‘배타성’
팬덤 정치는 민주당에선 오래된 현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문파(文派)가 대표적이다. 이들 사이엔 문 전 대통령의 의중을 최우선에 두며 어떻게든 그를 지키겠다는 목표 의식이 뚜렷했다.

하지만 개딸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기본적으론 이 의원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 의원은 대선 국면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아젠다를 뒤로 물렸음에도 이들은 강하게 집착했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 동의를 서두르자는 이재명계 의원들의 주장과도 맞서 “부결”을 외쳤다.

지난달 12일 당시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성비위 사건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민주당의 입장을 밝히고 공식 사과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때 ‘불꽃 대장’이라 부르며 열렬히 지지했던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강욱 의원의 성비위 의혹에 대해 조사를 명하고 공개 사과에 나서자 이들은 박 전 위원장을 즉시 비토했다. 지난달 20일 개딸 수십명은 여의도 민주당사 앞을 찾아 “박 위원장은 ‘내부 총질’로 지방선거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이날 박 전 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돌아선 개딸’들에 대해 “그들이 정말 개딸분들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타협하지 않는 적대적 성향이 개딸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개딸도 모르는 개딸…이재명 측 일각도 “불안하다”
‘개딸’이라는 명칭은 대선 직후인 3월10일 여성시대 등 친여성향 커뮤니티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일부 여성들이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아버지역 배우가 극중 성격이 드센 딸을 부르던 애칭인 ‘개딸’을 자처하며 이 의원 지지에 나선 것이다.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등 친(親)남성 전략을 펼친 국민의힘에 대한 반감이 유희적으로 발현된 측면이 있었다.

지난 3월 중순 이재명 의원과 개딸들이 주고받은 메시지. 커뮤니티 캡처
대선 패배 뒤 칩거하던 이 의원이 SNS상에서 “개딸님 고마워” 등 호응에 나서면서 개딸들의 존재는 언론의 집중 주목을 받았고 행동은 급격히 조직화했다. 지지층 지형을 잘 아는 민주당 당직자는 “‘밭갈이운동본부’나 ‘개혁국민운동본부’(개국본)들도 개딸이란 용어 하에 뒤섞이면서, 이젠 누가 개딸이고 아닌지 누구도 구분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명계 초선 의원 역시 “개딸은 전향한 문파일 것”이라고만 말할 뿐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3월 초 개딸이 됐다는 여성 A씨(31) 역시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우리도 개딸의 범주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며 “현재 박지현 전 위원장 이슈 등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고, 활동하는 커뮤니티도 여러 군데로 분산돼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도 이제는 다소 긴장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14일에도 이 의원은 개딸에 대해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고 한껏 띄었지만, 7일 국회 등원에 맞춰 화환을 보낸 개딸을 향해선 “마음만 감사히 받고 화환은 정중히 사양하는 점 양해바란다”는 말을 SNS에 남겼다.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대선 전후로 2030 여성이 대거 지지를 선언해 도움이 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개딸이 이후 여러 커뮤니티를 잡아먹으면서 이 의원 지지를 주도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될까 불안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재명 측은 “투표권 부여” 주장…“정체성 없는 표심에 휘둘려”
그럼에도 이 의원 측은 8월 전당대회에서 개딸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당헌·당규 개정까지 요구하고 있다. “당비 납부 기준을 현행 6회에서 3회로 줄여야 한다”(이수진 의원), “개딸 등 신규당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안민석 의원)는 주장이다. ‘권리 행사 6개월 전 입당한 권리당원 중 6회 이상 당비를 납부한 당원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는 현행 당헌에 따르면 3월 이후 입당한 개딸들의 전당대회 투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다. 대선 후 신규 가입한 약 20만 명 중 상당수가 개딸로 분류되는 2030 여성일 것이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추정이다.

7일 오전 국회 정문 앞 담장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첫 출근을 축하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김경록 기
그러나 당 안팎에선 개딸들의 영향력 확대가 민주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더 왜곡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2030 여성 중 소수에 불과한 개딸들이 과잉대표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지방선거 당시 지상파 3사(KBSㆍMBCㆍSBS) 출구 조사 예측 투표율을 보면 20대 여성은 35.8%, 30대 여성은 41.9%에 그쳤다. 지난 대선의 예측 투표율(20대 여성 68.4%, 30대 여성 71.8%)에 비해 각각 30% 포인트 내외로 대폭 하락한 수치다. 개딸 신드롬을 두고 “대선 직후 2030여성의 이재명 지지가 급격히 늘었다”고만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민주당의 문제는 데이터에 기반을 두지 않고 강경파의 흐름만 맹목적으로 좇는 데 있다”며 “일반 민심이 아니라, 정체도 알 수 없는 집단의 표만 바라보면 다음 선거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전임 지도부도 “신규 당원 20만명 중 절반이 이재명 지지자라고 가정하더라도, 전체 국민에 비하면 한없이 적은 숫자”라며 “그럼에도 이들의 대표성을 높여 당 대표를 뽑자는 건 또다시 당을 ‘반향실(에코 체임버ㆍecho chamber)’에 가두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영(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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