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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당신과 나

검은 머리의 키가 큰 남자 옆에 면사포를 쓴 아가씨가 다소곳이 서 있다. 55년 전 우리의 흑백 결혼 사진인데 아주 낯설어 보인다. 지금의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사진 속 모습은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남들의 결혼식 사진 같다.  
 
사진 속 부부와 지금의 우리를 보니 그 긴 세월이 한순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고 백발의 두 노인만 남았다. 하지만 검은 색이 섞이지 않은 남편의 백발은 아주 보기 좋다. 성경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요”라고 했는데 인생을 열심히 살아오고 자녀를 열심히 키운 자에게 보내준 면류관 같다.  
 
젊음의 건강, 박력, 투지는 사라졌지만 남편 특유의 부드러움과 노년의 중후함 그리고 내적 충만이 가득한 언어는 우리의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해 주고 있다.  가끔씩 노년의 허무함을 승화시킨 농담을 던질 때는 함께 웃는다. 창가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모습은 어느 외국 영화에 나오는 노년의 배우처럼 보인다. 아주 멋지다.
 
젊은 날의 곧았던 몸이 굽어 ‘이제는 노인이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거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방해하지 않으려 책상에 앉아 나는 글을 쓴다. ‘당신과 나’라는 제목의 시다.  
 
“처음 만나던 날/ 손끝이 닿을까 떨어져 걸었지요// 어느 날 보니/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었어요// 그러다 한 시도 떨어지기 싫어/ 한 지붕 아래로 들어와 버렸지요// 세월 흘러/ 당신 닮은 딸, 나 닮은 아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 시책 어기고// 덤으로 딸 하나 더 낳았지요// 북적이며 살다가/ 큰딸 짝 찾아 떠나고 아들도 짝 만들어 떠나고// 막내딸마저 우리 곁을 떠나고// 다시 돌아보니 둘만 남아/ 가만히 손을 잡아 봅니다/ 넘어질까 무서워 손 꼭잡고 걸어갑니다.”

정현숙·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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