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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풍미가 있는 시

낡은 나조반에 흰밥과 가재미로 나도 나와 앉아서/쓸쓸한 저녁을 먹는다//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백석 시인의 ‘선우사(膳友辭)’ 부분
 
 
 
노릇하게 구워진 가자미와 열무김치를 나조반은 아니지만 조붓한 쟁반에 놓고 뒤뜰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가자미의 하얀 살을 발라내자니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다. 가자미와 열무김치에라도 말을 걸고 싶다.
 
백석의 시를 읽다 보면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확인된 그의 시가 100여 편쯤 되는데 시에 등장하는 음식의 종류가 11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국수, 무이징게국, 콩가루차떡 같은 시어들이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한다.
 
백석의 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의 우수성이 이유겠지만 그의 시가 품고 있는 음식 이야기도 한몫을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백석은 소위 ‘월북 시인’이다. 월북 시인들의 시가 해금된 것은 1987년이다. 그 전에 우리는 그의 시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1987년 이후 많은 작품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시가 연구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한국 현대 시백 년 사상 최고 시인’ 10인에 들기도 하고 그의 시집 ‘사슴’은 우리 시대의 시인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친 시집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제 백석의 시를 낯설어하는 이는 별로 없지 싶다.
 
백석은 살아있던 1930년대 상당한 모던 보이였다고 한다. 세련된 이국적인 외모와 지성을 갖췄다. 자야라 불리던 그의 연인과의 사랑 이야기는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그의 시는 서구적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토속성에 천착했다는 평가다. 그리고 음식 이야기가 많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그는 평안도 방언을 그대로 살려 고향의 맛과 풍경을 노래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려면 사투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도 하다.
 
‘백석의 맛’의 저자 소래섭 씨는 백석 시에 등장하는 음식을 중점으로 그의 시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준다.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이란 부제가 달렸는데 원래 박사학위 논문이던 글을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수정·보완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에 등장하는 음식의 맛이나 맛의 배경, 음식의 시대성까지도 깊고 넓게 알려주고 있다. 시의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미각의 역사도 두루 알려 준다.
 
시인보다 훨씬 후대 사람인 나도 그의 시에 나타난 음식과 음식이 동원되는 명절 풍경은 잊힌 세시풍속을 생각나게 하고 어릴 적 맛이 그리워지게 한다.  
 
음식에는 추억이 있다. 더욱이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은 오래도록 미각의 잔여로 남아 있다. 나는 가끔 마른 새우를 넣고 끓인 아욱 된장국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밥 위에 얹어 찐 새우젓이나 할머니가 해 주시던 쑥개떡이 그립다.  
 
선우(膳友)는 반찬 친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인간의 입장으로만 음식을 대하기보다 친구로 대하며 음식과도 대화를 나눈다는 건 음식을 먹거리 이상으로 여기는 마음이다. 음식이 상품화되어 고유의 개별성이나 손맛의 차별화가 무시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음식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고 미각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따뜻한 삶의 주체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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