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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아빠가 딸의 남자를 만날 때

내가 교꼬를 처음 만난 것은 27살 때였다. 교꼬는 23살,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생활 1년차. 그녀를 만난 지 딱 24시간 만에 그녀의 아빠를 만났다.  
 
교꼬와 나는 당시 미국 국적의 컴퓨터 회사 직원이었다. 나는 한국 지사에 근무하고 그녀는 일본 지사 직원이었다. 회사의 대외관계를 다루는 신생 부서의 일을 맡게 되어 업무 수습차 가는 출장길. 일본 지사의 같은 업무를 하는 부서의 책임자는 상무급, 직원이 60여명 있었다. 한국 지사에는 달랑 나 혼자. 그래도 아버지 뻘이 되는 담당 임원은 나를 자신의 상대역으로 깍듯이 대해 주었다.  
 
금요일 오후 날 보고 ‘우리’ 회사의 경영 철학에 관해서 직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본으로 뭔가 배우러 갔는데 입사 1개월짜리 보고 모회사의 경영 철학에 대해서 강의를 하라니. 어쨌든 강단에 올랐다. 40여명의 부서 직원들이 모였고 앞줄에 열댓 명의 여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때 눈에 띈 여인이 교꼬였다. 모두 명찰을 달고 있어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사내 전화 번호부를 찾아서 전화를 했다.  
 


“교꼬상, 내가 일본이 처음인데 주말에 뭘 할지 모르겠어요. 주말에 안내를 좀 부탁할까요?” 당시 일본 지사는 주 5일 근무였다.
 
“갑작스러운 말씀이라 뭐라고 대답을 드려야 할지.” 교꼬의 망설임, 이해가 가는 대답이었다.  
 
저녁에 호텔로 전화가 왔다. “저는 주말이면 부모님을 뵈러 가요. 효도행이라고 하지요. 내일 같이 가실래요?”  
 
황당한 나의 요청에 더 황당한 제안. 속으로 ‘Why not?’ 기내에서 산 12년 시바스 리갈도 한 병 있겠다, 갑작스러운 손님 노릇 준비가 되어 있었다.  
 
토요일 새벽 기차를 타고 가나가와에 있는 교꼬의 집으로 향했다. 중간에 일본의 고도 가마쿠라에 내려서 하루 종일 놀면서, 배스킨로빈슨 아이스크림도 먹고, 가마쿠라 큰 부처님도 보고.
 
저녁에 교꼬의 집에 도착했다. 2층짜리 아담한 일본식 가옥.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교꼬의 부모가 기다렸다. 아버지는 아마 50 전후.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둘이 대작을 했다. 정종잔을 주거니 받거니. 반 시간도 안 되어서 그는 술이 취해 누워 버렸다. 교꼬의 어머니는 조용히 차를 따라 주기만 했다.
 
그날 밤 교꼬의 집에서 묵었다. 1층에는 부모가 쓰는 방, 2층에는 교꼬의 방 그리고 그녀의 오빠 방이 있었다. 오빠는 취직을 해서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서 내가 그의 방을 차지했다. 그 이튿날은 후지산을 구경하고, 도쿄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 바빠서 다시 교꼬 아버지와 대작을 할 기회는 없었다.  
 
세월이 지나 나도 딸의 아버지가 되고 난 다음 가끔씩 교꼬 아버지가 생각난다. 딸이 불쑥 집으로 데리고 온 첫 남자가 한국인, 불편한 상황이었을 터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술이 취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딸의 남자를 처음 만날 때,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한 순간이다. 내가 교꼬 아버지 입장이었다면 어찌했을까? 딸 바보 아빠는 아마도 술기운을 빙자해서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겠지.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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