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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너무 변해서, 너무 변하지 않아서 추락한 민주당

최훈 편집인
민주당의 처참한 위기다. 170석 공룡여당으로 호령해 왔던 그들이었다. “경기도지사마저 내줘 바닥 끝으로 갔어야 했다”는 얘기가 더 설득력이 있다. 그들은 왜 추락하는가. 너무 변해서였다. 그리고 너무 변하지 않아서였다.

간직했어야 할 초심(初心)이 있었다. 필자의 첫 정치 현장 취재는 1992년 마포구 용강동의 민주당이었다. 김대중(DJ)후보가 민자당의 김영삼(YS) 후보와 맞서 대선에 도전했다. 정대철·이해찬·문희상 등 기존 DJ세력인 신민주연합당에 YS의 3당 합당에 반발하며 DJ를 비판적으로 지지한 세력이 합쳤다. 이부영·유인태·제정구·원혜영·김부겸 등은 민주연합에서 용강동으로 건너왔다. 노무현·홍사덕·이철·이기택·박찬종·김정길·김원기 등은 (꼬마)민주당에서 합류해 왔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원본(原本)이었다.
30년 전 민주당 “과격주의 반대”
강성 팬덤에 당내 민주주의 절멸
민주화의 순수했던 초심 되찾고
시대의 흐름 맞춰 변화해야 생존

대부분 군부 정권 시절 민주화에 헌신하던 학생·재야 운동 출신이라 진보, 사회 개혁 성향이 강했다. 노무현·이부영 등은 당의 지역 구도, 제왕적 총재 타파를 외치며 늘 DJ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거침없는 쓴소리들로 바람 잘 날 없었다. 요즘 민주당처럼 문재인 청와대 눈치나 보며 ‘호위대’ ‘거수기’ 노릇 했던 부자 몸사리기 습성과는 사뭇 달랐다. 마포 선술집에선 기자들과 뒤섞인 격렬한 토론(그때도 정치는 늘 언론 탓이었지만)이 이어졌다. 직선제 개헌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정권 교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그들의 숙원이었다. 공통의 목표를 향한 열정과 사명감, 동지 의식이 느껴졌다. 운동가 개인으로서 지켜내려던 최소한의 도덕적 규범도 그때의 용강동을 규율했다.

당시 민주당의 통합선언문. “어떠한 과격주의도 반대한다. 정책·대안을 갖고 일하는 정책 정당,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과학 정당,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 정당이 목표다.” 거대 민자당에 당세, 지지도가 훨씬 낮았다. DJ와 운동가들에 대한 거부감도 적잖았다. 그래서 중도층 민심에 조금이라도, 한 표라도 더 다가가려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DJ는 “내 부덕의 소치로 국민 신임에 실패했다. 겸허히 인정한다”며 정계 은퇴와 자진 영국 유배를 택했다.

30여 년 뒤. 거대 여당의 달콤한 기득권 속에 민주당은 그 초심을 잃어버렸다. “대선 패배의 모든 책임은 오롯이 내게 있다”던 후보와 당대표가 84일 만의 셀프 출마다. 김포공항을 때려 부순 땅에 이 당이 그토록 ‘소돔과 고모라’로 배척해 왔던 ‘강남’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탐욕과 모순의 블랙코미디가 정점이다.

문자폭탄으로 상징되는 팬덤 정치의 과격함은 일상이 됐다. 노사모까지는 당 밖의 자발적이고 순수한 참여가 주류였다. 그러나 정봉주와 미권스, 김어준의 나꼼수, 문파를 거치며 권리당원들로 입성한 광팬들은 스스로 주인이자 스타로 군림했다. ‘불문곡직 완전 승리’의 광풍은 초강경 초선 의원들과 권커니 잣거니 모든 이슈와 선거를 지배했다. 당은 반(反)민주, 반(反)지성, 반(反)소통의 노예가 돼버렸다. ‘조국 수호대의 궤변’ ‘금태섭 징계’를 넘어 대통령 앞에서 “경기가 거지 같다”고 푸념한 시장 상인을 융단폭격하기에 이른다. 민심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정상의 강을 건넜다.

“우리 당 초선과 얘기할 때는 반드시 녹음해 둬야 한다”는 한 중진 의원의 토로가 이 당의 지금이다. 집안의 어른 노릇 해야 할 중진들조차 국회의장 경선에서 “민주당 정신”을 외치며 과격에의 굴종을 자임한다. 충분히 명분이 있었던 게 ‘검찰 개혁’이다. 그러나 군사쿠데타 하듯 밀어붙여 흑백 구도로 단순화한 게 검수완박 입법이다. 내각제에서나 있어야 할 게 ‘당론’ 아닌가. 모든 선량의 영혼을 옥죄는 게 민주화 세력이라는 민주당의 할 일인가. 경멸했던 군사정권과 뭐가 다른가. 그들은 과연 어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는가.

변하지 않아서도 추락하는 민주당이다. DJ 정부는 지지층의 반발에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열린 결단을 내렸다. IT 벤처산업의 도입, 진흥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포착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권력은 이제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한·미 FTA로 경제 영토를 개방해 갔다. 진영의 뭇매를 맞으며 동맹 강화를 위한 이라크 파병을 설득했다.

미국 민주당 정신, 그 자체인 바이든 대통령이 지구 반대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지방선거 유불리만 따지던 게 가장 각성했어야 할 우리 민주당의 현주소다. 글로벌 마인드, 시장·신산업의 도약에 발 빨라야 할 건 바로 진보라는 민주당 아니겠는가. 기업과 자본, 시장경제에 배타적인 젊을 적 편견과 이념의 굴레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질 않는다. 날만 새면 타다금지법, 부동산 중과세, 기업규제 3법, 임대차보호법 등 시장을 질식시킬 규제였다. 세계와의 경쟁 속에 훌쩍 성장한 기업과 시민을 담을 그릇으론 너무 왜소할 뿐이다. 진보 고유의 자산일 지적·도덕적 우위와 인권·환경·차별해소·남녀평등·클린에너지에선 어떤 성장과 성취를 보여줬는가. 기억이 없다.

민주당의 적은 윤석열, 한동훈, 검찰, 일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자신들이다. 민주화 정당으로서의 순수했던 초심을 되찾고, 시대와 함께 변화하라. 심판의 날 총선은 1년10개월이 남았다.



최훈(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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