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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크라이나와 반도체 공급망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던 것이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 마이크로칩(microchip)을 미국은 긴박히 필요로 하고 있다. 마이크로칩의 원조가 되는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IC)는 1958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제조하였고, 그 당시 한국은 전쟁 직후에 그런 첨단기술은 상상도 못하는 헐벗고 굶주리던 나라였다. 이제 미국 대통령이 와서 보고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 반도체 기술과 생산 규모가 발전했다는 것은 큰 자랑으로 여길 만하다. 컴퓨터나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회로가 담겨있는 마이크로칩을 외국에서 대량 수입해 쓰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이나 대만 등 마이크로칩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나라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미국이 마이크로칩을 만들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효율적으로 저렴하게 생산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마이크로칩 공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 그것을 많이 만들지도 않는데 왜 그럴까? 마이크로칩의 생산 공정에서 네온(neon) 가스가 필요하고,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네온의 무려 70%정도가 우크라이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네온 가스라고 하면 생소하겠지만 밤거리를 장식하는 네온사인은 누구나 다 안다. 유리관에 네온을 넣어서 방전하면 오렌지색 빛이 나온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보면 의아하게 느끼도록 밤 풍경을 장악하는 빨간 교회 십자가도 네온사인이다.
마이크로칩 생산에 꼭 필요한 네온
네온 생산의 중심지는 우크라이나
소련이 지은 구식 제철소에서 생산
세상은 상호 의존성으로 얽혀있어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 밀이나 해바라기유 같은 농산물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알았는데 네온이 많이 생산된다는 것을 다들 모르고 있다. 그리고 네온이 왜 특정한 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지를 차분히 생각해보면 더 이상하다. 네온은 대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기체이다. 공기의 대부분은 질소와 산소이고 나머지는 이산화탄소, 그 외에 미량으로 아르곤, 네온, 제논등이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에 열거한 이 기체들은 화학 반응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온은 광물질처럼 특정 지역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대기 중에 있기 때문에 지구상 어디에서나 추출할 수 있다. 네온을 생산하고자 하면 그것을 공기에서 걸러 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왜 특정한 나라, 또 하필이면 지금 전쟁이 터진 우크라이나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복잡한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철을 생산할 때 그 부산물로 네온 가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제철소에서 강철을 만들려면 아주 센 불을 써서 원료를 가열해 주어야 하고, 그러한 불을 지필 때 그냥 보통 공기를 써서는 안 되고 산소의 비중을 높여서 정확히 조절해 줄 필요가 있다. 옛날 소련에서 많이 지었던 형식의 대규모 제철소에서는 대기를 분리하여 질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걸러내는 시설을 자체에서 가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대기 중에 포함된 미량의 기체들도 따로따로 분리되어 나오게 되며, 그 중에 네온이 포함되어 있다. 서방에서는 이런 구식 제철소가 거의 사라졌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는 아직 가동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그 부산물로 나오는 네온을 잘 모아서 사용하는 사업이 발달되었다. 그런데 자국에서는 별 수요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수출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가 근래 우크라이나 남동쪽 마리우폴을 포위하며 공격했을 때 우크라이나 군은 그곳의 거대한 제철소에 박혀서 끈질기게 저항했던 것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이크로칩을 만드는 데 도대체 왜 네온이 필요한가? 이것도 복잡한 이야기인데, 필자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의의는 그 복잡함에 들어있으므로 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로칩을 만드는 공정은 실리콘으로 만든 표면에 미세한 전기회로를 넣기 위하여 레이저(laser)를 사용해서 정밀하게 깎는 것이다. 레이저란 특정한 파장을 순수하게 가진 빛을 의미하며, 그 파장의 길이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런데 마이크로칩을 만드는 데 유용한 짧은 파장을 가진 레이저에 네온이 들어간다. 거기에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아르곤과 불소인데, 그 반응이 방해를 받지 않고 제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배경을 제공하는 것이 네온이다. 201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크림반도를 빼앗았을 때 국제시장에서 네온 가스 가격이 6배나 뛰었다고 한다. 올해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네온 공급이 두절되리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과학과 기술과 인간 사회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얽히고설켜 있다. 일이 잘 될때는 깨닫지 못하는 상호의존성이 여러 방향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이크로칩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외의 결과는 그러한 상호의존성을 새삼스레 상기시켜 준다. 앞뒤를 재지 않고 일을 벌릴 경우 예기치 못한 후유증으로 뒤통수를 맞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의존하지 않아도 네온을 조달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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