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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준석의 미래를 묻다] 홀로그램·초박막렌즈…1억분의 1m가 여는 세상

왜 지금 나노·메타물질인가
노준석 포항공대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
대학 시절을 회상하면, 항상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게임 스타크래프트다. 이 게임에 나오는 클로킹이라는 특수능력은 유닛들을 투명하게 만들어 반(半) 무적 상태로 만들어준다. 게임을 즐기면서 필자는 이 클로킹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상상은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가량에 불과한 아주 작은 소재와 함께 현실이 됐다.

인류는 새로운 재료의 발견과 가공을 통해 기능을 향상시키며 함께 발전했다. 선사시대에 맨손으로 사냥하던 인류는 구석기시대에 가공하지 않는 뗀석기를 사용하며 더 쉽게 수렵할 수 있게 됐다. 신석기시대에는 돌을 가공하여 뾰족하게 만들거나 손잡이가 달린 간석기로 가공하여 한 단계 더 발달한 도구를 사용했다.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이라는 합금을 제련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이후 철기시대에 철을 발견하고 가공법을 향상시키며 인류의 모든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다. 철은 청동을 몰아내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금속이 됐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통신 시대는 전자공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대표하는 전자공학의 시대 발전은 실리콘의 발견, 그리고 그 가공 방법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4차산업혁명 이끌어갈 나노소재
인간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줘

철보다 180배 강한 탄소나노튜브
지구~달 연결 엘리베이터도 가능

나노 한계 극복할 인공 메타물질
‘해리포터’의 투명망토 시대 열까

코로나19 PCR 검사에도 사용돼

나노 수준으로 정밀 가공된 실리콘 박막을 이용하면 빛을 원자 수준에서 자유자재로 조절을 할 수 있고, 이런 현상을 이용해 특정한 빛의 조건에만 반응하는 홀로그램을 만들어 해킹이 불가능한 보안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노준석 교수가 국제학술지 케미칼 리뷰에 발표한 표지논문 그래픽.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혹은 곧 마주하게 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재료가 중심에 설 것인가. 필자는 그 답을 나노 소재에서 찾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재료라고 생각하는 나노 소재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에 이미 자리 잡고 있으며, 기존 물질로는 이루지 못한 큰 변환점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강철보다 180배 강하지만 직경은 1나노미터(1억분의 1m)에 불과한 탄소나노튜브는 지구와 달을 연결하는 우주 엘리베이터의 실현을 가능하게 만드는 길을 열었다. 이러한 기계적 성질 외에도 탄소나노튜브는 우수한 전기적 전도성과 열전도성을 지니고 있어 에너지 저장장치와 반도체 회로, 터치스크린 등에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최근 국제적인 이슈가 된 코로나19 PCR 검사에도 나노 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PCR의 공식 명칭은 ‘유전자 증폭 기술’로, 쉽게 말하자면 여러 차례 가열하고 식히면서 특정 유전자를 증폭시키는 기술이다. PCR 검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DNA를 빛으로 빠르게 가열하고 식힐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금 나노 입자를 DNA가 들어있는 용액에 균일하게 분포시켜 빛으로 금 나노 입자를 가열하고 식히는 ‘광열 가열’(photothermal heating)을 이용하게 된다. 이런 나노 소재 기술을 통해 PCR 검사 시간을 크게 줄여, 수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었다.

양자점이 구현한 OLED화면

또 다른 나노 소재인 ‘양자점’은 높은 색 표현력을 가지는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데 이용된다. 양자점은 그 크기를 수 나노미터에서 수십 나노미터까지 줄여 전자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양자 제한효과’를 이용하며, 입자의 크기에 따라서 에너지 밴드갭이 바뀌며 다른 색을 발광하게 된다. 양자점에서 발광하는 빛은 매우 좁은 선폭을 가지고 있어 색 표현력이 뛰어나다. 따라서 LCD나 OLED 기반의 디스플레이보다 색 표현력이 우수하여 미래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나노 소재의 특성 또한 자연이 정해준 원자와 분자 구조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 우리가 그 특성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나노 소재는 자연계에 존재하거나 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얻어낸 것이어서 그 특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없는 ‘메타물질’ 개발

한편 ‘메타물질’은 이런 나노 소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궁극적인 물질로 각광을 받고 있다. 메타물질은 초월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타’(meta)에 ‘물질’(materials)을 결합한 단어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성을 지니도록 인위적으로 구성되고 가공된 물질을 뜻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의 물성은 원자와 분자 구조 등 화학적 구성 원소들과 이들의 배열에 따라 결정된다. 반면 메타물질은 우리가 기존의 재료를 가공해 만들 수 있는 크기의 인공적인 원자인 ‘메타원자’(meta-atom)와 이의 배열에 따라 결정되는 물성을 가진다.

메타물질을 통과하는 파동은 메타물질 내에 배열된 메타원자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특히 파동의 파장이 메타원자보다 매우 클 경우 메타물질은 하나의 유효한 물성을 갖는 균일한 매질로 간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에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광학적 특성을 가지도록 설계된 메타물질은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메타원자로 구성돼 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자나 분자는 1나노미터보다 작거나 이와 비슷한 크기여서 현재 기술로 가공이 어려운 것과는 달리, 메타물질은 수십~수백 배의 크기라서 현재의 나노 공정 기술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즉 메타물질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성질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됨과 동시에 현재의 공정 기술로 구현이 가능한 인공적 물질이다.

레이더로 못 잡는 스텔스 기술

메타물질의 특이한 광특성을 이용해 구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투명망토가 있다. 공간에 따라 다른 광특성을 가지는 메타물질 내에서 빛의 진행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물체를 숨길 수 있다. 이 외에도 빛을 완전히 흡수하여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기술, 선택적 파장의 빛을 반사하거나 방출하여 에너지 소모 없이 온도를 내릴 수 있는 냉각 소자에 응용이 가능해 통신·국방·친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 및 응용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메타물질을 2차원으로 만든, 얇은 두께의 메타표면에 관한 연구도 주목받고 있다. 기존 메타물질이 3차원의 형상과 배열을 가지고 있어 공정이 어려웠던 것과 달리, 메타표면은 2차원의 패터닝 기술만으로 제작할 수 있는 단층 메타물질이다. 특히 메타표면은 그 두께가 수백 나노미터에 불과하지만 빛을 높은 자유도로 꺾을 수 있다. 홀로그램과 초박막렌즈 등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고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나 가상·증강·혼합현실에 사용되는 안경과 렌즈 형태의 기기처럼 소형화가 필요한 경우에 쉽게 접목할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이나 콘택트렌즈에 가상·증강 현실을 구현해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가상회의 장면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스캔해 실제 상점에 가지 않아도 모든 가구의 배치와 인테리어를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스마트폰서 나올 3차원 개인비서

스마트폰에서 3차원 홀로그램으로 개인 비서가 나와 하루의 일과를 브리핑해 줄 날도 멀지 않았다. 이미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메타표면으로 만들어진 얇은 렌즈, 메타렌즈가 기존의 광학 기술의 혁신을 끌어낼 것이란 평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메타표면은 광학 분야를 넘어서 전파·음향·지진파 등 다양한 분야에도 활용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메타물질과 나노 소재는 상호보완을 통해 혁신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어 그 두 가지를 접목하는 것 역시 비상한 관심을 끈다. 그래핀 등 2차원 나노 소재를 메타물질과 함께 이용하면 한두 개의 홀로그램 이미지가 아니라 영화 수준의 움직이는 홀로그램 영상을 만들 수 있는 능동 광학 소자를 구현할 수 있다. 이외에도 양자점·양자우물·탄소나노튜브 등 다양한 나노 소재가 메타물질과 결합하면 PCR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한 초고민감도의 센서를 구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공상과학

나노 소재와 메타물질은 그 크기가 매우 작아 잘 보이지 않고 설계와 생산이 까다롭지만 나노 공정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욱 효율적으로 다양한 광특성을 가진 나노소재와 메타물질을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재료에 대한 이해, 새로운 스케일의 가공 기술, 사람의 직관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메타물질을 비롯한 나노 소재의 기술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 발전된 과학기술이 새로운 인류의 삶에 스며들 날이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과학이 인류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약 50년이라고 한다. 30년 전 필자가 유년 시절 꿈꾸던 미래,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영화 ‘해리포터’의 투명망토, 일본만화 ‘드래곤볼’의 스카우터(AR glass)와 같은 공상과학이 구체적인 소재를 통해 가까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노준석
1981년생.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에서 기계공학으로 석사를, UC버클리에서 기계공학과 나노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박사후연구원과 아르곤국립연구소 연구책임자를 거쳐 2014년 포항공대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2019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젊은과학자상, 2022년 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 등을 받았다.

노준석 포항공대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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