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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자주포·훈련기 잭팟…폴란드가 K-방산 사생팬 된 이유 [이철재의 밀담]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는 한국에선 약소국으로 알려졌다. 18~19세기 주변의 강대국인 러시아ㆍ프로이센ㆍ오스트리아는 폴란드를 세 조각으로 쪼갠 뒤 삼켰다.

2019s년 8월 15일 국경일에 시가 행진 중인 폴란드 육군 전차. 앞으론 한국산 K2 흑표 전차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로이터=연합

1990년대까지 국어 교과서에 실린 마리 퀴리(퀴리 부인)의 일화는 당시 폴란드의 설움을 잘 얘기해준다.


러시아의 통치를 받고 있는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마리 퀴리는 학교서 몰래 폴란드 역사를 배우다 러시아 장학사가 들이닥쳤다. 러시아 장학사는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마리에게 러시아어로 러시아의 위인, 주기도문 등에 대해 질문했다. 마리는 러시아어로 유창하게 대답했다. 만족한 장학사는 돌아갔지만, 퀴리는 모멸감을 느끼고 담임 선생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런 사연을 접한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폴란드 하면 약소국을 떠올린다.

그러나 폴란드는 한때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을 아우르는 제국이기도 했다. 독일과 러시아도 폴란드 앞에 쩔쩔맬 때도 있었다.

특히 윙드 후사르는 폴란드의 주력이었다. 깃털 장식을 단 은빛 갑옷을 입은 기병인 윙드 후사르가 장창을 들고 뛰어들면 막아낼 적이 없었다.

1683년 비엔나 전투에서 오스만군을 향해 돌격하는 폴란드 윙드 후사르.

이 같은 역사를 가진 폴란드가 다시 윙드 후사르의 명예를 되찾으려 한다. 한국산 무기가 21세기 폴란드의 갑옷과 장창이 될 전망이다. K-방산이 동유럽에서 엘도라도(황금의 땅)를 찾을 가능성이 생겼다.


"한국과 방산협력을 강화하기를"

발단은 지난달 29일~지난 1일 한국을 찾은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 장관이었다. 그는 지난달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국방ㆍ방산 협력과 최근 안보 정세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30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국방일보

국방부는 보도자료에서 “특히, 양 장관은 양국 간 방산 협력이 한국과 폴란드 군간 관계를 긴밀히 하고 공동의 이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하고 향후 실질적인 방산협력을 보다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한의 키워드는 ‘방산 협력’이었다. 브와슈차크 장관의 일정을 보면 더 뚜렷해진다. 그는 지난달 30일 이종섭 장관보다 강은호 방사청장을 먼저 만났다. 지난달 31일엔 한국의 대표적 방위사업체인 한화디펜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 로템을 들러봤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폴란드는 이번 방한에서 한국의 전차, 장갑차, 보병전투차량, 자주포와 경공격기를 살 의향을 분명히 밝혔다. 또 방공 미사일에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다면 K-방산은 엄청난 잭팟을 터트리게 된다.


폴란드가 K-방산 사생팬이 된 이유는

폴란드가 한국과의 방산 협력에 적극적인 이유는 안보 상황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폴란드의 걱정이 보인다.


폴란드 지도. 빨간색으로 그어진 곳이 러시아의 칼리는그라드 주다. 러시아 본토와 사이에 벨라루스가 가로막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가 자리 잡았다. 원래 독일 땅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지면서 러시아 영토가 됐다. 또 폴란드는 러시아와 한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붙어있다.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직접 받는 나라가 폴란드다. 그래서 폴란드는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일처럼 보지 않는다. 무기와 군수물자를 우크라이나에 대량으로 지원하고 있다.


폴란드 대사관 무관을 지낸 이기영 예비역 대령은 “러시아와의 국경을 가진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폴란드가 가장 크고, 국방력도 가장 세다”며 “국토의 대부분이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강력한 국방력이 없으면 외세에 쉽게 침탈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가 자국군의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보내면서 전력 공백이 생겼다고 한다. 또 폴란드의 주력 무기는 아직 옛 소련제다. 나토 회원국인 만큼 서방제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폴란드가 그동안 미국제와 독일제 무기를 구매했지만, 가격이 워낙 비싼 데다 납기가 늦고 사후 지원이 잘 안 됐다고 한다”며 “그런데 K-방산은 가성비가 좋은 데다 납기를 잘 지키고 사후 지원이 좋다는 게 폴란드의 인식”이라고 귀띔했다.


미국제 전차 구매했지만 국산 전차도 원해

폴란드는 지난달 미국의 M1A2 에이브럼스 SEPv3 전차 250대를 47억 5000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러나 미국 제조업체의 사정상 납기가 많이 늦어질 것이라고 한다. 또 이 정도 물량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자국의 T-72 전차 상당수를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폴란드로선 애가 타는 상황이다.


육군 제7 기동군단의 K2 흑표 전차가 이동하면서 포를 쏘고 있다. 육군

그래서 한국의 K2 흑표 전차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독일의 레오파르트 2 전차와 경합 중인데, 폴란드의 마음은 K2로 기울어졌다고 한다.

육군의 K808 차륜형 장갑차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

폴란드는 한국의 장갑차와 보병전투차량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차륜형 장갑차인 K808이 대상이다.

육군 제11 기동 사단 훈련장에서 보병전투차량인 레드백이 기동하고 있다. 한화디펜스

또 K21이나 한국이 호주에 제안 중인 레드백과 같은 보병전투차량도 폴란드의 장바구니에 들어있다. 폴란드도 한국처럼 강이 많다. 그래서 도하 능력이 있는 K21을 선호하는 의견이 폴란드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봤듯 보병전투차량은 적의 대전차 화기를 막아내야만 하기 때문에 레드백을 선호하는 의견도 있다.


차체에 이어 본체까지 탐내는 폴란드

폴란드는 이미 자주포에서 한국과 연연이 있다. 2014년 세계적 베스트 셀러인 국산 자주포 K9의 차체 120대를 수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K9 자주포. 중앙포토

사연은 이렇다. 폴란드는 옛 소련제 122㎜ 자주포를 버리고 서방의 표준 규격인 155㎜ 자주포로 바꾸려고 계획했다. 그래서 나온 게 AHS 크라프(폴란드말로 게)다. 당초 자국산 차체를 쓰려고 했는데, 문제가 많아 K9 차체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포병 전력이 급한 우크라이나에 크라프 18대를 지원했다. 추가로 60대를 우크라이나에 판다는 뉴스도 나왔다.



크라프 전체 보유량 120대의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에 가게 된다. 폴란드 포병은 손가락만 빨 수는 없다. 그래서 K9을 요구한 것이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크라프의 경우 포탑은 영국제, 엔진은 독일제, 변속기는 미국제, 차체는 한국제 등 다국적”이라며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크라프를 줄 때 4개 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해 폴란드가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K9의 파워팩(엔진+변속기)은 국산화할 예정이다. 폴란드로선 더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퇴짜 놓은 항공기 다시 바라기도

폴란드는 2011년 국산 훈련기인 T-50 골든이글에 퇴짜를 놓은 적 있다. 당시 이탈리아제 M-346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T-50을 바탕으로 만든 국산 경공격기인 FA-50을 노리고 있다.

경공격기 FA-50. 국방부


관련 업계에 따르면 M-346의 운영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FA-50을 사면 M-346보다 비용이 덜 나가면서 전투 초계도 가능하다는 게 폴란드의 셈법이라고 한다.


이번에 폴란드의 구매 목록에는 안 들어있지만, 국산 방공 미사일인 천궁-Ⅱ에 대해 문의도 있었다고 한다. 폴란드가 맞닿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주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9K720 이스칸데르가 배치됐다. 이 미사일엔 필요할 경우 핵탄두를 갈아 끼울 수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4일(현지 시각) 칼리닌그라드에서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모의 발사 훈련을 벌였다. 당시 핵공격 연습이었다는 추정이 나왔다.



그런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칼리닌그라드 주에서 멀지 않다. 300㎞ 안팎이다. 이스칸데르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뜻이다.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체계인 천궁-II. 한화디펜스

미국은 패트리엇 미사일 2개 포대를 폴란드에 긴급 배치했다. 하지만 폴란드로선 안심이 놓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올린 게 천궁-Ⅱ라고 한다.


실무협의 진행 중…K-방산 대박 가시권

폴란드가 내놓은 K-방산 보따리의 총액은 얼추 10조원에 가깝다. 하지만 당장 수출 계약이 나오는 게 아니다. 협상에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가 마음이 급하다. 벌써 한국과 실무를 협의 중이라고 한다.


폴란드군 장교와 자원 봉사자들이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국경을 건너는 걸 도와주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와 맞닿은 폴란드는 무기와 군수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폴란드는 일단 한국에서 소량을 받아온 뒤 현지서 부품을 갖고 조립생산해 기술력을 쌓은 뒤 한국의 협력을 받아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모델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도 폴란드에 교두보를 쌓으면 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 등 옛 동유럽 국가에 수출로를 뚫을 수 있다.


일각에선 폴란드가 과연 대금을 치를 수 있는지 의심한다. 2020년 폴란드의 국내총생산(GDP)는 5942억 달러(2020년)다. 2020년 국방 예산은 128억 달러다.


그런데 폴란드는 올 2월 국가방위법을 만들어 국방비를 GDP의 3% 수준까지 긁어 올리기로 했다. 현재는 2.2% 수준이다.



여기에 국군 지원 펀드(PFR)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조성된 이 펀드는 코로나19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져도 폴란드 국방 예산에 영향이 안 가도록 해준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폴란드 국책 은행의 행장이 이번 국방장관 방한단의 일원이었다.

한국과 폴란드가 K-방산 대금을 금융적으로 어떻게 풀지 협의했다는 뜻이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방위산업 국산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폴란드의 K-방산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한국과 폴란드 모두 만족하는 수출 모델을 만든다면 K-방산이 도약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재(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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