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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 콜롬비아 대선에 좌파 바람…게릴라 반군 출신이 선두

중남미 내 미국의 최대 우방이자 ‘우파의 보루’로 꼽혀온 콜롬비아에 좌파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콜롬비아는 근현대 역사상 한 번도 좌파가 집권한 적 없는 유일한 중남미 국가다. 29일(현지시간) 대선 1차 투표에서 좌파 후보가 앞서면 역사상 최초로 좌파로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
지난 23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대선토론회에 참석한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좌파 페트로, 지지율 40%…여유 있는 1위
현재 지지율 선두는 구스타보 페트로(62)다. 지난 3월 13일 좌파연합 ‘역사적 조약’의 경선에서 80%가량의 압도적 득표율로 좌파 후보로 확정됐다. 페트로는 1980년대 무장 반군세력인 M-19(The April 19 Movement)에 몸담았던 ‘좌파 게릴라’였다. 이후 1989년 M-19가 정부와 평화협상을 체결하고 1990년 제도권에 진입하면서, 페트로는 2012~2015년 수도 보고타 시장과 상·하원 의원을 지냈다. 2010년과 2018년 대선에 출마했다.

페트로는 지난해부터 대선 여론조사 대부분에서 1위를 지켰다. 최근에도 4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부동의 선두주자로, 29일 1차 투표 통과는 사실상 보장됐다. 그가 과반을 얻지 못하면 3주 뒤(6월 19일) 2위 후보와 결선 투표를 치른다. 현재 보수연합 ‘콜롬비아팀’의 페데리코 구티에레스(47, 지지율 27%), 최근 깜짝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소속의 로돌포 에르난데스(77, 지지율 21%)가 결선투표 진출이 달린 2위 자리를 놓고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1차 투표는 한국 시간으로 29일 오전 4시께 종료된다.

포린폴리시는 “페트로의 부상은 콜롬비아가 지난 수년간 겪었던 광범위한 불안정의 결과”라면서 “그의 포퓰리즘적 메시지가 불평등에 지친 콜롬비아 유권자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우파 진영인 이반 두케 현 대통령이 코로나19 봉쇄에 따른 경기침체는 물론 부패와 범죄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페트로가 강력한 차기 주자로 급부상했다”고 진단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심화된 불평등, 좌파 후보 키웠다”
실제로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소득 불평등이 심한 국가다. 빈곤선 이하 인구 비율(2022년 기준)은 42.5%에 이른다. 지난달 콜롬비아의 식품 가격은 전년 대비 25% 이상 뛰었다. WP는 콜롬비아에서 수백만 명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 하루에 한 끼 이상 거르고 있고, 노동 인구의 절반가량은 최저 임금 미만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불법 무장단체가 시골을 장악하면서 치안이 악화되고 코카인 생산량이 기록적으로 증가해 마약 범죄가 늘었다. 이 와중에 두케 대통령이 지난해 서민의 부담을 늘리는 세제 개편안을 내놓자, 시민들은 ‘세제 개편안 철회 촉구 시위’를 시작했고 이는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 토론회에 참석했다.[AP=연합뉴스]

페트로는 4000명으로 추산되는 최상위 부유층을 대상으로 토지보유세, 법인세를 인상하고, 배당금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실직자를 위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석유·석탄 기반 경제는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죽음의 정치’가 될 것이라면서, 관광 중심 경제를 위해 화석연료 기반 산업을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했다.

이어 “콜롬비아가 두케 대통령이 집권한 2018년보다 국가 경제는 더 부유해졌지만 통화 가치는 달러 대비 40%나 하락했다”며 “생산적인 조직이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데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공약 이행을 위해 취임 이후 30일간 ‘경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의회의 반대를 우회하겠다고도 밝힌 상태다. 그가 속한 좌파연합 의석은 상원의 18%, 하원의 15%에 불과하다.

페트로의 러닝메이트인 프란시아 마르케스(40) 부통령 후보도 표몰이에 한몫하고 있다. 환경운동가인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첫 흑인·여성·미혼모 부통령에 도전 중이다. CNN은 “남미에서 두번째로 큰 공동체이자 오랜 기간 정치와 사회에서 소외돼온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의 표심을 마르케스가 공략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2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프란시아 마르케스 부통령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역대 최대 ‘핑크타이드’ 등장 예고
페트로의 당선은 최근 확산 중인 중남미 핑크 타이드(pink tide, 중남미 국가에서 파도 타듯 연쇄적으로 좌파가 집권하는 현상) 부활에 결정타가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콜롬비아가 좌파 정권으로 교체되고,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유력 주자인 룰라 디 시우바(77) 전 대통령까지 승리할 경우, 사상 처음으로 중남미 주요 6개국(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페루)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미국이 ‘폭정 트로이카’로 부르는 반미 국가인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와 더불어 역사상 가장 규모가 규모가 크고 강력한 핑크 타이드가 결성될 수 있다.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는, 이곳을 ‘뒷마당’으로 여겨온 미국에 대외 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남미 좌파 정부끼리 친밀해지고 비슷한 목소리를 내면서 미국과 맞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이 고립주의 경향 속에서 중국이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를 살려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은 콜롬비아의 두 번째 교역국이자 칠레의 최대 교역국이다. 러시아 역시 전쟁 전 코로나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민 보호 중심으로 나가는 동안 스푸트니크 백신을 중남미에 지원하며 환심을 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당장 내달 6일 제9차 미주 정상회담을 앞두고 파열음이 나고 있다. 북미와 중남미 국가 정상이 참여하는 이 회의에 미국이 독재와 인권탄압 등을 문제 삼아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3국 정상을 배제하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 등 중남미의 좌파 지도자들이 공개 반발하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은 페트로가 당선되면 콜롬비아 역시 기존의 친미 기조에서 벗어나,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페트로는 자신이 당선되면, 2012년에 발효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도 관계 회복에 나설 계획이다. 정치 컨설팅 업체 콜롬비아 리스크 애널리시스의 세르지오 구스만 국장은 “페트로는 경제의 급진적 변화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핵 버튼을 누르려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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