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유리천장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시크한 은발, 무릎 위 길이의 스커트, 구릿빛 피부, 그와 동시에 지적이고 우아한 목소리의 소유자. 지난 16일 프랑스 총리직에 취임한 엘리사베트 보른의 모습이다.올해 61세로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 만의 매력과 여유가 묻어났다. 보른의 지명은 지난달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의 여성 총리 지명에 대한 오랜 약속이기도 했다.
1987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교통·환경·노동 등 여러 장관직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보른 총리는 취임식에서 특별히 여성의 위상에 대한 언급을 했다.
“나의 임명을 소녀들에게 헌정하고 싶습니다. 꿈을 믿으라고, 우리 사회에서 그 어떤 것도 여성들의 지위를 위한 투쟁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보른이 프랑스의 첫 여성 총리는 아니다. 1991년 에디트 크레송이 최초로 취임한 바 있으나 부정 논란 끝에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30년 만에 맞는 이번 두 번째 여성 총리에 대해 프랑스 사회가 거는 기대와 의미는 크다.
총리 임명 며칠 후 프랑스 대통령실 엘리제궁은 새 내각 인선을 발표했다. 1기 내각 장관들과 새로운 지명자들로 적절히 구성된 새 정부는 총리를 포함해 남성 14명, 여성 14명의 장관들로 이루어져 성비 균형을 맞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 여성 대통령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웃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이 장기 집권하고 북구 유럽 국가들이 여성 지도자들을 계속 배출하는데도 파리의 권좌는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올해 4월 실시된 대선에서는 조짐이 달랐다. 주요 보수와 진보당들이 여성 후보자를 선출했고, 마크롱 대통령과 결선투표까지 붙었던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 펜 후보도 여성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프랑스 정치권은 아직 남성 위주이자 성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비판 받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비록 정치 지도자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여성들의 ‘유리천장’에 대한 도전은 여전히 역부족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19명의 국무위원 중 여성은 3명뿐이다. 지난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 외신기자로부터 내각의 여성 비율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순간 멈칫했다. 대외적으론 그야말로 요즘 ‘젤 잘 나가’는 나라의 숨기고 싶은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다행인 것은 대통령의 그 후 입장이다. 참모의 설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공직 인사에서 여성에게 과감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하겠다”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쿨하게 시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능력 있는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기용하는 변화를 기대한다.
안착히 / 한국 중앙일보 글로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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