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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To the End, Together

2월 끝자락이었을 것이다. 둘째 딸 부부가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뜨자 슬픔의 나락에 빠져 있던 둘째 딸 부부의 집을 방문한 것은 감정의 진폭이 우리 다섯 아이 중 가장 큰 둘째의 슬픔은 내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거대했다. 심리 상담가인 본인이 상담가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약을 먹어도 온종일 슬픔 때문에 울음이 터져 나온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딸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아내와 내가 딸과 함께 머무는 동안에도 몇 차례나 눈물을 쏟았다. 본인도 그 슬픔이 주는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처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손바닥 뒤집는 일처럼 쉽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도 딸은 자기에게 주어진 슬픔을 이겨내려 몇 가지 행동 계획을 우리에게 털어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둘째는 작년에 베를린과 뉴욕마라톤에 도전하려고 준비하다가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포기했다.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딸아이의 결심에 내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 둘째는 매해 자기 생일에 하프 마라톤을 뛰는데, 올해도 자기가 사는 곳에서 우리 집까지 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때 나도 결심을 한 것이다. 혼자 달리는 딸아이의 곁에서 함께 하겠다고. ‘사랑은 함께 비를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계획을 아내에게 넌지시 전달했다. 그러면 딸 때문에 어두워진 아내의 마음도 조금 밝아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아내가 내 계획을 발설한 것이다. 나의 계획은 둘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둘째는 내게 달리기 전용 운동화와 양말을 보냈다. 나를 격려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나의 하프 마라톤 준비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트레드 밀 위에서 5마일을 달렸는데 그런대로 뛸 수가 있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뛰다가 10마일 정도를 뛸 수 있을 때 밖으로 나왔다. 우리 집 옆에 바다를 끼고 Board Walk가 있는데, Beach 9 스트릿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대충 11마일이 되는 코스를 두 번 뛰었다. 두 번 다 추웠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트레드 밀 위를 뛰는 것과 길 위를 달리는 것은 아주 달랐다. 달리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 하는 회의가 내가 달리고 있는 길옆, 대서양의 파도처럼 쉬지 않고 밀려왔다.
 
5월 15일. 둘째의 생일에 나는 딸과 함께 딸네 집 앞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하프 마라톤을 시작했다.
 
‘to the end, together’ 브루클린 다운타운에서 시작해서 Flatbush 애비뉴를 따라 우리는 아주 씩씩하게 달렸다. 1마일을 뛰고 그다음부터는 내가 앞서 뛰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가기보다는 누군가의 등을 보고 따라가는 일이 쉬운 법이니 말이다.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었다. 13.1마일의 고단했지만 행복한 여정을 마치고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가족들이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아내는 근처에서 딴 장다리꽃으로 꽃관을 만들어 월계관처럼 우리 머리에 씌워 주었다.
 
딸의 생일에 두어 시간을 함께 달리며 오로지 둘째 딸만을 위해 나의 시간을 헌정했다. 시간을 선물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준다는 말과 같다. 둘째 딸과 함께 달리며 서른일곱이 되는 둘째 딸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한 것 같아 지금도 내 가슴이 따뜻하다.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선물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김학선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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