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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청록파(靑鹿派)

한홍기

한홍기

요즘 젊은 분들 가운데 ‘청록파’ 시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청록파 시인은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사람을 일컫는다. 이 세분은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에 항거하며 틈틈이 써온 시를 정지용의 추천으로 광복 직후인 1946년에 제목을 ‘청록집(靑鹿集)’으로 ‘문장’지를 통해 발표를 하였다. 시집의 이름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왔다. 향토적 서정을 노래한 박목월의 시, 민족 정서와 전통에의 향수를 담은 조지훈의 시, 시대적 고난과 절망을 불멸의 생명력으로 초극하려 한 박두진의 시, 이들의 시는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가운데 자연의 새로운 발견을 소재로 삼았다.
 
청록집은 같은 출판사 을유문화사에서 근 60년이 지난 20년 전에 제 2판이 나왔다. 나는 시카고에서 오래 전 우연히 이 시집을 발견하고 감격하였다. 시카고의 유일한 서점이 문을 닫느라 재고 정리를 하던 중 많은 책을 뒤적이다 2판으로 나온 이 책을 구입하였다. 무엇보다 감격한 것은 멀리 미국에서 이러한 시집이 있었다는 것과 이곳 교민들의 문화 의식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책은 1판과 함께 엮어 같이 출간하였는데 당시 1판의 고색 창연한 종이에다 가로가 아닌 세로로 나열한 시들이 더욱 정감 있게 하였다. 세분을 모두 합친 시 36편으로 비교적 얇은 시집이나 그 무게는 감당을 못할 정도로 다가 왔다.  
 
이 청록집은 우리의 젊은 시절과 그전의 세대에 시대를 풍미하던 시들이다. 특히 박목월의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로 시작하는 ‘나그네’와 박두진의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로 시작하는 ‘묘지송’(墓地頌)은 당시 우리들이 입에 달며 무교동의 청녹 다방과 명동의 학사 주점에서 독재에 항거하며 고독을 달래던 주제이다.
 
고려대학교에서 “청록파 시의 대비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기중 교수는 이 시집은 해방 직후 목적의식을 앞세운 좌익 시단에 맞서 젊은 우익들이 펴낸 첫 작품집이라는 점과 해방 이전의 순수시와 전후 전통 서정시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는 점에서 그 문학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지훈 시인은 나의 학창 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그는 굵은 테 안경에 과묵하고 명강의로도 유명하였으며 그의 커다란 시비(詩碑)는 현재 고려대학교 상징으로 학생들이 잘 보이는 대 운동장 한곁에 있다. 그는 고려대학교 응원가를 작사하기도 하여 고연전에 선창으로 학생들의 민족 정신 고양에 힘찬 기개를 느끼게 하였다. 그는 고대 신문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으며, 조지훈 교수를 모시며 고대 신문 초대 편집국장으로 명필을 날렸던 이태영씨는 나의 선배로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을 와 시카고에서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기도 하였다. 이태영씨는 아직도 젊은 현직 고대 신문의 후배들이 찾아와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는 Metropolitan Bank에서 부사장을 역임하다 은퇴 후 자식들이 있는 시애틀에서 거주하며 현재 자서전과 워싱톤주 보수주의 연구소에 논문을 집필하고 있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조지훈의 시를 소개한다.
 
봉황수(鳳凰愁) :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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