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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어디만큼 왔냐, 당아당아 멀었다

몸에 밴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해마다 5월이면, 그때 일들이 떠오르고 가슴앓이를 한다. 화인으로 박혀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몸이 사라지지 않으면 소멸될 수 없는 그 풍경들은 세월에 녹슬지 않고 갈수록 선명해진다.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를 시작한 날은 하필 석가탄일이었다.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이 가해졌다. 젊은이들이 길바닥에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병원은 피투성이로 넘쳐났고 관조차 동이 났다. 아스팔트를 적신 붉은 피는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무섭게 타올랐다.  
 
그 엄청난 사건들은 한 줄도 보도되지 못했다. 도로가 막히고 전화 통신도 끊겼다. 신문은 물론 라디오도 TV도 침묵했다.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광주 시민은 폭도로 매도되었다.  
 
광주는 섬이 되었다. 힘으로 짓밟힌 곳. 누구도 오갈 수 없는, 깜깜하게 고립된 곳.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암울한 그 섬에 한 줄기 빛이 비쳤다. 광주 시민을 구하기 위해 미국 항공모함이 온다는 소식이었다. 도청 분수대 앞에 모인 시민들이 함성을 질렀다. 역시, 미국이구나! 그런데….
 
“미국 시간 1980년 5월 22일 오후 4시, 백악관 상황실. 광주에서 첫 집단 발포가 벌어진 직후에 미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 이른바 관계 기관 대책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는 철저히 미국의 안보 논리에 의해 진행됐고, 미국은 그 직전에 있었던 신군부의 발포 행위를 받아들였습니다. '공수여단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나 생명이 위험한 경우 발포하도록 권한을 승인받았다.' 미국 국방부 정보보고서, 내용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시민군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표현했습니다. 광주 시민의 생사를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 회의에 걸린 시간은 불과 75분. 그 사이 광주시민들은 조금만 더 버티면 미국이 도우러 올 것이라고 믿었으니… 아이러니, 즉 예상과는 반대의 비극적 결말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에 언급되어 있는 구절이다. 위 글을 읽으면서 나는 소름 돋는 슬픔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감내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그날, 목련꽃 이파리처럼 떨어져간 영령을 위해 새삼스럽게 옷깃을 여민다.  
 
한바탕 피바람이 휩쓸어간 다음 신문은 말했다. 사망 154명, 행방불명 64명, 중상 93명.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숫자가 얼마인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5.8 광주민주화운동은 집요하게 왜곡되고 폄훼되어 왔다. 북한 특수부대가 내려왔다,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된 거다 등, 국회에서조차 합법을 가장한 선동을 해왔다. 선동, 바람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어떤 의원은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고도 했다. 그럴까. 바람이 분다고 진실의 촛불이 꺼질까.    
 
다시 바람이 분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인가를 기상예보 없이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어디만큼 왔냐, 당아당아 멀었다.” 남도에서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는 노래다. ‘당아’는 ‘아직’이란 뜻이다. 42년이 지난 오늘. 80년 5월에 대한 문답이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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