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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권·공정·연대 다짐한 시간, 하늘엔 무지개가 떴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5월 10일, 무지개가 떴다.

그는 별의 순간을 지나 한낮의 광장에 섰다. 별의 순간은 어둠을 배경으로 했기에 더욱 밝게 빛났다. 그러나 한낮의 광장은 발밑에 자신의 그림자를 밟은 채로 정수리 위의 태양을 견뎌야 한다. 고독하지만, 피할 수 없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 앞 광장은 아침 8시경부터 차곡차곡 채워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래 처음 보는 대규모 인파였다. 국민 참여 신청분에 당첨된 이들이 4만1000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니 인파의 대부분은 일반 시민이다. 오랜만의 나들이인지라 기념식이라기보다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인 양 옷차림이 새뜻하고 표정도 설렘으로 들떠 있다. 질서정연하게 순서를 기다려 기념품인 부채와 마스크, 목걸이형 비표를 받고 소지품을 확인한 후 식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문득 궁금해졌다. 나라와 나라 밖 곳곳에서 온 남녀노소 각계각층 참가자들 하나하나에게 ‘스토리’가 있다. 누구도 폄훼하고 침범할 수 없는 개개인의 스토리, 그 어떤 스토리가 기대와 의미가 되어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일까? 지금은 그들이 새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기념식이 끝나는 순간부터는 대통령이 그들의 스토리를 새겨듣고 보듬어야 한다. 나의 지지자 우리 진영의 외침만이 아닌, 오늘 하루 그토록 무수히 거듭해 외쳤던 ‘국민’의 목소리를.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장 위로 무지개가 떠 있다. 뉴스1

1시간가량 진행된 식전 행사의 주제는 ‘꿈’이었다. 무대의 배경인 백월(back wall)을 어린이들이 꿈꾸는 나라를 그린 그림으로 장식했고, 차별 없이 꿈을 꾸고 공정하게 꿈을 이룬다는 취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연단이 연주를 하고,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과 청년들이 치어리딩과 뮤지컬 등을 통해 꿈을 표현했다. 취임식 총감독은 전문 공연진이나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 아마추어들의 공연과 관객석 방향으로 길이 나 있는 돌출형 무대 등에 대해 새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을 피하고 세대와 계층을 두루 아우르려다 보니 9년 만에 치러진 취임식이 시대의 감성을 따라잡지 못해 진부해진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더 낮게 사회적 약자와 미래 세대를 포용하며 더 가까이 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취임사의 메시지도 선명했다. 양극화와 사회 갈등, 공동체의 결속력 약화 등 인류 사회의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무엇과 싸워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응축된 연설문이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반(反)지성주의를 과학과 진실을 통해 타파해야 한다는 대목이나 자유·인권·공정·연대 등 아름답지만 결코 실현하기 쉽지 않은 가치를 또박또박 발음할 때는 연설이라기보다 새 대통령이 자신에게 하는 다짐으로 들렸다.

취임식 슬로건인 ‘다시, 대한민국!’의 ‘다시’와 ‘대한민국’ 사이의 반점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재도약을 위해 숨을 고르며 각성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다시’여야 한다. 나는 지난주까지 제20대 대통령 인수위 국민통합위원회에서 각 부문 전문가들과 함께 사회문화분과의 국민통합 과제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30년 동안 골방에서 소설이나 쓰던 칠실지우(漆室之憂)가 분연 세상 구경을 나선 셈인데, 나 같은 개인주의자가 ‘통합’을 말할 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갈라치기와 내로남불은 이제 그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존중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통합의 동력으로 삼아 저출산과 고령 사회를 비롯한 목전의 난제들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한낮의 광장에서, 그는 스스로를 활짝 열어 소통하고 또 소통해야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는 도중 주위가 술렁거려 뒤돌아보니 맑은 5월의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좋은 일이야. 잘 될 거야!”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화안했다. 무지개는 모두에게 무지개다. 부디 새 대통령이 오늘 밝힌 대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지혜와 용기로 극복한 경험을 가진 ‘위대한 국민’을 뒷배로 삼겠다는 각오를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맑은 하늘과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5월의 하루였다.

김별아 소설가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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