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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독재자 가문 36년만에 재집권…'국가 통합' 가능할까

마르코스, 선친 행적 미화하거나 회피…'반독재' 시민 반발 불가피 부정축재 환수 이행 여부에 '촉각'…압력 행사시 저항 커질 듯

필리핀 독재자 가문 36년만에 재집권…'국가 통합' 가능할까
마르코스, 선친 행적 미화하거나 회피…'반독재' 시민 반발 불가피
부정축재 환수 이행 여부에 '촉각'…압력 행사시 저항 커질 듯



(하노이=연합뉴스) 김범수 특파원 = 필리핀을 21년간 철권통치한 고(故)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독재자 가문이 36년만에 권력을 다시 잡게 됐다.
필리핀 전역에서 9일(현지시간) 실시된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은 지난 1957년에 태어나 선친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장기집권하면서 독재자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특히 정권을 잡은 뒤 7년이 지난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명의 반대파를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에 참다못한 시민들이 1986년 시민혁명인 '피플 파워'를 일으켜 독재에 항거하자 마르코스는 결국 하야한 뒤 3년 후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마르코스는 대선 유세 기간에 독재자인 선친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과거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했다.
언론 매체에서 선친의 철권 통치 및 시민들의 항거로 인한 퇴진에 관해 의견을 묻는 질문이 나오면 그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또 과거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다면서 앞으로 중요한 건 '국가 통합'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같은 마르코스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결국 36년전에 시민들에 의해 쫓겨난 독재자 가문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 셈이어서 향후 필리핀은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마르코스 치하의 암울한 과거 및 권력형 비리를 떠올리면서 "독재자의 아들은 출마 자격이 없다"고 주장해온 진보 단체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앞서 필리핀의 여러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마르코스의 대선 출마를 금지해달라며 총 6건의 청원을 선관위에 잇따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그가 공직을 맡았던 1982∼1985년에 소득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탈세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전력을 이유로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청원을 냈다.
필리핀 내국세법에 따르면 세금 관련 범죄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공직 선거에 나올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선관위가 6건의 청원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모두 기각 결정을 내리자 해당 단체들은 선관위 결정에 불복하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대법원에 소송을 내기로 했다.
마르코스가 취임 후 아버지의 전철을 따른다면 시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마르코스를 반대하는 많은 시민들은 과거 선친의 독재 행적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아들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올해 23세의 전문직 여성으로 로스쿨에 재학중인 마틸다 델라 크루즈는 "마르코스는 선친의 독재 행적과 관련해 희생자들에게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면서 "오히려 당시 억압 정치가 필리핀 전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만일 마르코스가 아버지의 독재 행보를 답습한다면 다시 국민들이 봉기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선친이 집권 당시 빼돌린 천문학적인 액수의 정부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을 제대로 이행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마르코스 치하에서 남편이 암살된 고(故)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86년 취임 직후 마르코스 일가의 재산 환수를 위해 대통령 직속 바른정부위원회(PCGG)를 설치했다.
PCGG는 지금까지 마르코스 일가를 상대로 1천710억 페소(4조원)를 환수했고 현재 추가로 1천250억 페소(3조원)를 되돌려받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따라서 마르코스는 대통령에 취임하면 직속 기구인 PCGG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부정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반납하는 작업을 감독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만일 마르코스가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 선친의 독재 행적을 미화한 것처럼 부정축재 사실을 전면 부정하거나 환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한다면 시민들의 저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bums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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