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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영화연구소, ‘접경인문학총서’ 시리즈로 펴낸 『영화운동의 최전선』을 가다

[사진]OSEN DB.

[사진]OSEN DB.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함민복 시인의 시 ‘꽃’에서 인용)

‘한상언영화연구소’는 개인의 이름을 내건 국내 유일의 영화 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남북한 영화 및 동아시아 영화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전시, 출판을 위해 2018년 4월에 설립한 학술연구기관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중앙로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한상언영화연구소에 발을 들여놓으면 간이 이층에 정돈돼있는 방대하고도 다양한, 특히 북한 관계 영화, 문학 문헌 자료에 놀라게 된다. 자료 수집과 분류에 각고의 공을 들인 한상언 소장의 노고가 번져있는, 경이로운 공간이다.

이 연구소에는 현재 한국영화 관련 자료 1000여 점을 비롯해 북한에서 발행된 단행본과 잡지 등 총 5000여 점이 넘는 문헌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연구소의 한상언 대표는 한양대에서 영화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식민과 분단을 주제로 한국영화사와 북한영화사, 영화운동사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 자료를 모아 본디 모습을 복원하고 재해석하는데 주력해온 한상언영화연구소가 최근 ‘접경인문학자료총서’ 의 일환인 『영화운동의 최전선』을 펴냈다.

지난 2018년 서울도서관에서 열었던, 해방 뒤부터 1960년대까지 북한에서 발행한 문학예술도서 250점 전시도록 『평양책방』과 『월북영화인 시리즈 1~3권(문예봉, 강홍식, 김태진 전)』(2019년), 『멜랑콜리 연남동』(이효인, 2020년), 『평양, 1960』(한상언, 홍성후 공저, 2020년), 『한국 뉴웨이브 영화의 작은 역사』(이효인, 2021년)에 이은 ‘접경’ 자료집이다.

‘접경(接境)’ 인문학총서는 “다종다양한 이념과 정당이 공존하면서 얽힌 역사가 전개된 혼종의 장소였던 해방공간에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상을 찾아 경계를 넘나들었던 ‘접경인’ 월북예술가들을 재조명”(차용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하기 위해 이 연구소가 기획, 출판해오고 있다.

이번에 펴낸 『영화운동의 최전선』은 민족영화연구소와 한겨레영화제작소의 자료집이다.

[사진]OSEN DB.

[사진]OSEN DB.


총 676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자료집은 1980년대 후반 영화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민족영화연구소 대표 이효인과 한계레영화제작소 제작국장이었던 영화감독 이수정이 수장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에는 두 단체의 정기총회 회의록을 비롯한 각종 중요 회의의 원자료와 업무일지, 신진영화인의 양성을 위해 운영했던 청년영화학교 교재 등을 수록하여 당시 민족영화연구소가 어떻게 활동하고 운영되었는지를 자료를 통해 낱낱이 보여준다.

또 민족영화연구소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각 대학의 연극영화학과 및 영화 서클 등의 행사 자료와 민중문화운동 단체와의 교류를 확인하는 전단, 포스터, 팸플릿 등도 수록, 당시 영화운동과 영화문화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당시 이론 투쟁 과정에서 전개됐던 각종 문헌 자료를 포함 행사 사진, 전단, 포스터 등 시각 자료, 그 외 민족영화운동의 활동을 보여주는 서류 같은 흥미로운 자료가 망라돼 있다.

한상언 연구소 대표는 “영화 운동이 막 활발하게 전개되는 시기였던 1980년대에 민족영화연구소와 한겨레영화제작소, 두 단체의 활동 내역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자료집 출간으로 그 당시의 신자유주의 파고와 군부독재 정권에 맞선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이 무엇을 대안으로 삼아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출간의 의미를 부여했다.

한상언 대표는 또 “영화 운동 활동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 모은 이 자료집은 영화 운동 방법론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며 사료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라면 이 자료집의 가치를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이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OSEN DB.

[사진]OSEN DB.


한국 독립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던 민족영화연구소는 영화평론가 이효인과 이정하가 중심이 되어 1988년 9월 설립했다.

민족영화연구소는 민족영화 담론연구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던 각종 집회 및 시위들을 비디오나 8mm 영화 카메라로 촬영하고 이를 다큐멘터리로 제작, 교육용 교재로 만들어 배포했다.

1989년 3월에 제작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영화제작소를 설치했고, 1989년 9월 설립 1주년을 맞아 민족영화제작소를 한겨레영화제작소로 확대 독립, 민족영화연구소, 한겨레영화연구소의 이원 체제로 운영했다.

1990년 1월에는 독립영화 제작 6개 단체(민족영화연구소, 한겨레영화제작소, 아리랑, 영화공동체, 영화마당 우리, 우리마당 영화분과)의 협의체인 한국독립영화협의회의 조직을 주도했으나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 등 세계정세의 대변화 속에서 1990년 말 해체됐다.

『영화운동의 최전선』은 당시 검열로 인해 제도권 언론에 수록할 수 없었던 ‘민족영화론’에 관한 이효인의 글을 여러 대학의 대학 신문을 통해 발굴, 수록했다. 이렇게 수록된 문헌 자료들은 1980년대 한국의 독립영화역사 이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자료 제공. 한상언영화연구소


홍윤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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