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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도 운동권과도 충돌…껍데기와 싸운 천생 시인 김지하

최원식 문학평론가 추모글
1985년 김지하 시인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제4회 민족문학의밤 행사에서 민중문학의 형식문제에 대한 강연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황망합니다. 생각건대 당신은 꼭 한 발자국 시대를 앞선 분이었습니다. 유신의 공포에 온 국민이 숨죽일 때 독재와 온몸으로 충돌했고, 민주화가 고비를 넘긴 6월 항쟁 이후에는 굳이 운동과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1970년대의 투쟁과 시와 사상만으로도 당신은 불멸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존을 돌보지 않고 구태여 혼자 가는 길에 들어 이처럼 쓸쓸히 기세(棄世)하시다니 참으로 바보요, 그래서 천생 시인입니다.

왜 시인은 차마 그만두지 못함인가? 유신의 종언이 신군부의 대두로 귀결된 1980년대의 비통한 역전(逆轉) 앞에서 시인은 운동의 대전환을 꿈꾼 바, 독재와 반독재의 이원대립이 지닐 어떤 문제점을 천재적으로 통찰했습니다. 반독재에 대한 독재의 대응이 4월 혁명 때처럼 단순하지 않게 진화한 것은 차치하고, 그 술수를 뚫고 반독재가 권력을 잡은 이후 역대 민주정부들의 부침에서 보듯, 민주파 또한 권력의 덫에 치여 필경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게 된 점이 더욱 비통한 것입니다.

이 쳇바퀴를 타개하기 위해 시인은 동학(東學)을 비롯한 개벽파에 주목합니다. 특히 2세 교주 최해월(崔海月)의 재발견이 핵심입니다. 녹두 장군의 무장봉기 노선을 부정한 순응파로 비판받은 해월의 진면목을 살림살이(남을 살리고 나도 산다)의 상생도덕으로 파악한 눈이 보배입니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의 대동세상을 내다본 위대한 개벽파의 숨은 줄기가 드러나매, 정통혁명론을 고수한 민중민주파(PD)를 넘어설 터전이 마련됩니다. 통일 운동에서 남한의 주도성을 확실히 할 또 다른 열쇳말 남조선 사상을 들어올림으로써 민족해방파 또는 주사파(NL)도 지양하게 된 바, 시인은 간절히 우리 운동을 반분한 PD와 NL의 고질적 대립을 넘어서고자 원력을 세운 것입니다. 자신의 간고한 옥중 투쟁에서 몸으로 깨달은 이 진실을 옹위하기 위해, 아니 우리 운동의 새로운 전진을 위해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바쳐 진리의 전파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겨우 망각을 뚫고 솟은 개벽파의 숨은 혀에 아뿔싸, 한번 어긋지매 우리는 결국 귀를 닫았습니다.

최원식
돌아보건대 제게 끼친 시인의 은덕이 깊습니다. 출옥 후 이수인 형님의 초청으로 대구를 찾았을 때 저는 말석에서 시인을 친견했습니다. 그때 앉은 자리마다 사자석(獅子席)이며 그때 발한 말씀마다 사자후(獅子吼)였습니다. 행복한 감전은 시인이 떠난 뒤에도 거의 1주를 지속했는데, 제가 1990년대에 참구(參究)한 동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화두가 다 그때 싹텄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평범에 끝내 굴복했습니다. 지난 김윤수 선생 추도식에서 ‘꼭 와야 할 자리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 다음 모임에는 오겠다’는 전언을 접하고 내심 뵐 날을 고대하더니, 그예 그 복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형님, 굳이 부처님 오신 날, 먼 길 떠나심은 또 무슨 뜻이리까? 운동이 정치와 만나 구부러지기를 거듭하는 이 수상한 시절, 시인이 온갖 비난을 무릅쓴 속셈이 나변(那邊·어느 곳 또는 어디)에 있을지 침통히 사유하며, 김지하의 껍데기는 내치고 알맹이를 닦을 새 공부가 절실합니다. “사물은 부서질 대로 부서져야만 비로소 순수한 근원의 힘을 내뿜”는가 봅니다. 이제 어디 가서 큰 의심을 물으리까? 부디, 부디, 명목(瞑目·눈을 감음)하소서!

인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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