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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독이 든 성배였나…월드스타 강수연은 너무 젊었다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중앙포토]

너무 일찍 도착한, 너무나 이르게 떠난 강수연을 기다리며
강수연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안 것은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를 통해서다. 대학생의 일상을 전면에 내세운 이례적인 영화였고, 미미(강수연)와 철수(박중훈)가 청자켓에 청바지를 입고 청청한 차림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미미 혹은 강수연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나이를 보여주었다. 한 시대의 상징이자 청춘의 표상으로 가까이 있는 그녀로 다가왔다.

2001년에 개봉한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 그리고 이들의 선배라 할 수 있는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을 나란히 놓으면 1970년대, 80년대 그리고 90년대의 대학생이 보인다(‘엽기적인 그녀’가 개봉한 것은 2001년이지만 여주인공은 1978년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개봉한 순서대로 영자, 미미 그리고 그녀라고 불리는 여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남자 주인공과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가며 청춘을 대변한다. 그것은 매번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청치마를 입은 미미는 80년대의 상징이었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 [사진 태흥영화사 제공. 연합뉴스]

하지만 강수연은 미미를 금방 떠나버렸다. ‘씨받이’(1986)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보다 한해 먼저 개봉했지만 1987년에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대학생 미미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를 확고히 만들어 준 것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였다.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이때부터 강수연의 이름 앞에는 ‘월드 스타’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강수연은 시대를 벗어나 조선 시대 나이 어린 씨받이를 연기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 인물이었고, 세속적인 삶을 통과한 후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성과 속’을 아우르는 여인의 초상이 되었다. 20대 여대생 미미는 원숙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월드 스타라는 명칭은 그녀를 너무나 일찍 중심에 있는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두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1980년대 말의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제 막 문호를 개방한 상태였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러시아와 동유럽 영화제 수상작들을 국내에서 상영하는 행사들이 있었고, 이러한 상호 교류의 결과로 1989년에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한국 영화가 세 편이나 초청된다. 당시 모스크바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는 ‘국제영화제’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영화제에 초청받거나 수상하는 일은 ‘국위 선양’쯤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국제영화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영화를 비롯한 여러 대중문화 분야에 사전 검열제도가 철폐되고, 1996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자유롭게 영화들이 오가면서 해외의 영화제 관계자들의 왕래했고, 90년대 후반부터 칸을 중심으로 한국 영화들이 선을 보이고 수상을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의 월드 스타 강수연은 사건(event)이기보다는 하나의 해프닝(happening)에 가까웠다. 만일 강수연이 2000년대 들어 여우주연상을 이처럼 수상했다면 그녀가 등장하는 국제적인 작품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은 강수연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1980년대 수상을 가능케 한 것은 강수연의 놀라운 힘이자 에너지였다. 하지만 유령처럼 붙어 있는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를 떼고, 강수연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왔는지 기억하고 싶어서다. 언론은 ‘월드 스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녀에게 원숙하고 화려한 모습을 암묵적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월드 스타 강수연은 너무나 젊었다.

영화 '경마장 가는 길'. [중앙포토]

개인적으로 강수연 선배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임상수 감독의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촬영 현장이었다. 우연히 따라갔던 현장에서 촬영이 끝난 후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콧소리가 섞인 특유의 목소리와 말투가 있다. 젊은 감독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배라는 명칭을 싫어해서 “누나”라고 부르라고 종종 말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풍문처럼 한 술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첫 만남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29살의 동갑내기 세 여성 중 하나인 호정을 연기한 강수연은 더 이상 월드 스타도, 통통 튀는 여대생도 아니었다. 빠르게 변하는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에서 일과 섹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웃집 누이로 보였다.

공교롭게도 1990년대 초반에 나온 대표적 출연작을 극장에서 다 보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는 원작 소설을 읽었음에도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고, ‘베를린 리포트’(1991)에서 입양된 상처받은 영혼을 연기하는 모습은 인상이 깊었지만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1991)이었다. 누군가는 야한 영화쯤으로 기억할지 몰라도 꽤나 적나라한 한국 사회의 묘사와 인물들의 대사들이 훗날 코리안 뉴웨이브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했다. 월드 스타였던 강수연은 1990년대 초반에 새롭게 등장한 박광수·장선우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 뉴웨이브의 한 자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까이 있기보다는 어딘가 신비해 보이고 멀리있는 대상으로 보였다. 그런 점에서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전환점이었다. 다른 여배우들과의 호흡 속에서, 이전의 남성 파트너로서의 인물과는 다른 그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녀에게 새로운 얼굴을 완전히 부여하지는 못했다.

2000년대 이후의 강수연을 만난 것은 주로 영화제에서였다. 부산영화제에서 일하면서 페스티벌 레이디처럼 나타나 구원투수 역할을 자청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사극 ‘여인천하’가 공전의 인기를 누렸다고 하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그 후 영화제에 직접 뛰어든 상황들은 대략 알고들 있을 것이다. ‘다이빙 벨’ 사건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을 거쳐(이 역시 구원투수의 역할로 시작됐다) 단독 위원장이 됐고, 끝내 영화제를 떠난 후 한동안 침묵했다. 너무나 일찍 영화제를 통해 월드 스타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그녀를 침묵하게 한 것 또한 국제영화제였다. 그런 점에서 영화제는 그녀에게 독이 든 성배가 아니었을까.

젊은 감독들을 통해 그녀가 종종 술을 사주거나 격려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침묵하는 세월 속에서도 ‘가오’를 중시하는 기질은 여전했고, 젊은 감독들은 함께 영화 작업을 해보기를 청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를 기다린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의 필모그래피를 반복하며 피로해 보이는 연상호 감독에게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고, 강수연을 선택하여 SF를 시도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우리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찾을 수가 있을까?

8일 배우 강수연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늘어선 추모 화환들.

하지만 우리에게 도착한 또 한 번의 때 이른 소식은 영화가 아니라 죽음이다. 아마 그녀의 생몰 연대를 확인하게 된다면 생각보다 젊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20대 초반에 세계적인 영화제 주연상을 수상했고, 임권택과 코리안 뉴웨이브의 페르소나였던 그녀를 우리는 너무 일찍 높은 자리에 올려둔 채 외면해 버렸다. 한참 젊었던 그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도 전에 월드 스타라는 명칭과 함께 떠나보냈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래서 애도를 하기 전에 그녀의 얼굴이 담긴 영화를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영화와 함께 살아왔던 그녀의 삶을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돌아보면 그녀를 만난 것은 영화 속이거나 영화들로 둘러싸인 영화제가 전부였다. 일본의 어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하든, 어느 영화 현장에 있든 영화를 벗어난 강수연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마지막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될 수가 있다면.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이상용 영화평론가ㆍ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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