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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름으로 활동해 더 당당" 재일교포 배우 현리

일본 영화 '우연과 상상'으로 개봉 당일(4일) 한국을 찾은 배우 현리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처음부터 일본 이름 없이 자랐어요. 부모님이 당당하게 살라고 하셨고, 숨길 것 없이 자라며 더 강해질 수 있었죠.”
4일 개봉한 일본 영화 ‘우연과 상상’(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으로 내한한 재일교포 배우 현리(36‧본명 이현리)의 말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연예계에선 드물게 한국 국적, 한국 이름으로 배우 활동을 해왔다. 개봉 당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한국 이름으로 (배우) 활동하는 게 제가 거의 처음이니까 특이하게 받아주시는 것 같다. 세대도 달라졌고 요즘은 K팝이나 한국영화가 잘돼서 잘 봐주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나라 가리지 않고 재밌는 작품 하고 싶죠”

최근 그는 한국 관객과 자주 만났다. 지난해 한국 개봉한 일본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스파이의 아내’(2020)에선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생체실험을 폭로하는 만주의 여인 히로코였다. 올해 애플TV+가 출시한 다국적 드라마 ‘파친코’에서는 일본인 키요가 되어 배우 정웅인‧이민호와 호흡을 맞췄다. 그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작품에서 좋은 감독‧스태프‧출연진과 같이하고 싶다고 늘 말해왔는데 이제야 이뤄지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우연과 상상’은 일본 차세대 거장에 꼽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아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하마구치 감독이 직접 쓴 우연에 관한 단편 3편을 묶어낸 작품이다. 현리는 그중 제1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 출연한다. 함께 택시를 탄 친구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에게 새로운 연애에 대해 털어놓는 츠구미 역이다. 현리는 하마구치 감독의 단편 ‘천국은 아직 멀어’(2016)에 이어 출연했다. 하마구치 감독이 공동 각본을 쓴 ‘스파이의 아내’까지 하면 그와 세 번째 만남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그를 또다시 기용한 이유를 “단편은 짧고 흐름 없이 포인트, 포인트를 잘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렵지만, 현리라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영화사에 전했다.

3편째 뭉친 日감독 “현리라면 가능할 것”
4일 개봉한 일본 영화 '우연과 상상'.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으로, 일본 차세대 거장으로 꼽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오리지널 각본으로 연출을 맡았다. 사진 왼쪽이 배우 현리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실제 총 25분여 길이 단편에서 츠구미는 도입부를 흥미롭게 여는 중요한 역할이다. 자신의 연애담을 대사만으로 10분 가까이 들려주며 후반부 반전의 토대를 다져놓는다. 꽤 긴 분량의 대사가 현리는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대사 속 연애 상황을 하마구치 감독이 따로 써준 대본에 맞춰 상대 배우와 촬영까지 해봤기 때문이다. “현실은 아니지만 츠구미로서 진짜 경험한 걸 (영화 속 장면에서) 들려줄 수 있었죠.”

그는 하마구치 감독의 독특한 연출법을 단편 때 미리 경험한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하마구치 감독님은 집에서 뭘 준비해오는 걸 정말 싫어한다. 현장에서 다 같이 감정을 최대한 빼고 대본 리딩하며 대사를 한 줄 한 줄 외게 하고 뭔가 나타나면 그 감정을 대사에 심어달라고 주문한다”면서 “연기 생활을 길게 하다 보니 대사 한 줄을 읽어도 감정이 들어가는데 그걸 안 하려고 가장 노력했다”고 말했다.

“봉준호 존경, 전여빈과 연기해보고파”
현리는 가수 이정의 ‘열’(2006) 뮤직비디오로 데뷔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을 위해 일본에 머물다 미술 유학을 온 어머니와 결혼해 일본에서 그를 낳았다. 10대 시절 거리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며 연예계 데뷔를 꿈꿨단다. 그는 대학 졸업은 하라는 부모님 제안에 가장 자신 있는 국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학과로 법학과(아오야마가쿠인대학)를 택했다. 대학 재학 시절 연세대로 교환학생을 와서 한국 연기학원을 다니며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한국말이 서툴 때인데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주셨다. 자란 환경, 피부색, 나라가 달라도 사람의 감정은 다 같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2016), 넷플릭스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나시’(2019) 등 주로 일본 작품에 출연했다. 무녀가 된 재일조선인 소녀를 연기한 영화 ‘물의 목소리를 듣다’(2014)로는 이듬해 타카사키 영화제 최우수 신진 여우상을 받기도 했다. 2020년 독립영화 ‘카오산 탱고’로 처음 한국 작품 주연을 맡았다.

재일교포인 현리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모두 유창하게 했다. 그는 "작품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재밌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한국 영화‧드라마도 즐겨본다는 그는 영화 ‘밀양’ 배우 전도연,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을 최고로 꼽았다. 직접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위클리 J-웨이브)에 영화 ‘내가 죽던 날’의 박지완 감독 등 한국 영화인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단다. 함께 연기하고픈 배우로는 드라마 ‘빈센조’의 전여빈을 들었다. “일본작품에서 한국어 대사를 쓸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드라마 ‘너와 세계가 끝나는 날에’(닛폰TV‧훌루)에서 기회가 와서 행복했다”며 활짝 웃었다.

4년 전 부모님이 서울에 다시 정착하게 되면서 일본엔 혼자 남았다는 그다. “‘파친코’ 촬영으로도 오고 서울에 자주 온다. 두 달 전에도 왔다”면서 작품으로도 “좋은 인연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 에이전시에도 소속돼있고 준비 중인 작품도 있어요. 아직 말씀드릴 수 없지만, 곧 좋은 작품으로 찾아뵈려 합니다.”



나원정(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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