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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세상 너머에 사는 사람들

데이케어센터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하던 어느 가을날의 일이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도착하던 케이가 그날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9·11 테러로 죽은 아들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누구의 사진이냐고 물었더니 뚫어져라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하는 말이 “내가 알고 있는 착한 청년이야”라고 한다. 참혹하게 죽어간 불쌍한 아들의 사진을 앞에 놓고도 제대로 슬퍼할 수 없는 케이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육체가 죽기 이전에 정신부터 죽어가는 알츠하이머. 자신이 알고 있던, 자신을 사랑하던 남편, 아내, 아들과 딸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질병은 단순한 기억상실증이 아니다. 우리의 지능과 감정을 관장하는 두뇌, 그것을 통해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보고 듣고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과 불쾌한 것, 선과 악을 분별하는 뇌 기능을 서서히 붕괴되고 파괴되어 기억력은 물론 그 사람의 성격, 인격, 인지능력, 행동, 신체기능 등 그 사람의 모두를 무참하게 부숴버린다.
 
줄리언 무어가 연기한 영화 ‘Still Alice’에서 50대 중반의 언어학 교수인 하울랜드는막내딸에게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기분을 설명한다. “날이 좋을 때는 보통 사람처럼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우울한 날에는 나도 나 자신을 찾을 수 없는 것 같아… 내가 누군지, 다음에는 또 무엇을 잃을지 모르겠어.” 하울랜드는 같은 사람으로 남아 분명히 남아있지만 더는 이전의 사람이 아니다. 진짜 앨리스 하울랜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알츠하이머 환자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시선이야말로 환자를 더 자극하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과 공감하면서 그들이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에 퇴직한 전직 교사였던 애나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자기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데이케어센터에서늘 창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리곤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점을 잃었던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위로와 안도감이었다.
 
줄리안 무어의 앨리스는 미국 알츠하이머 학회 연설에서 “나는 당분간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몹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삶과 함께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자책하지만, 여전히 순수한 행복과 기쁨의 순간이 있습니다. 나는 예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과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뿐이니까”라고 말한다.
 
“기억이나 자존감 없이 사는 이 세상은 그 본질이 벗겨져 모든 것이 더 풍부해 보인다. 이것은 훌륭한 보상이다”라고 얘기한 데이비드 센크의 ‘망각’이라는 책에 나오는 모리스 프리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의 시간과 장소가 사라지고 규칙이 더는 중요하지 않고 사회적 의무가 의미를 상실한 영원한 ‘지금’에 살도록 강요받는 환자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아픔, 그 너머에서 빛나는 순수한 영혼을 볼 수 있었다.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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