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길에서
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동행도 없던 차라 벤치가
전부 내 차지라 생각했는데
먼저 와 앉아 있던 햇살이 자세를 바꾼다
등 뒤로 수행하듯 서 있는 전나무가
매달린 바람을 놓아 보낼 때마다
제 그림자를 거두며 자리를 넓혀준다
함께 앉아도 넉넉한 자리를
더 편히 쉬라 내어주는 마음이 고마워
두 다리 길게 뻗고 누워본다
그 위로 햇살이 걸터앉아 피곤한 다리를 감싸주고
얼굴로는 그늘이 한껏 차양을 만들어 준다
아무도 없다 생각했는데
오늘 산책길엔 동행이 많다.
엄경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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