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붕괴 2년간…'가장 센 낙하산' 관광公 사장 성과급 1억
손민호의 레저터치

정권이 바뀌었다고 관광 수장도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나 관광공사 사장도 여느 공기업처럼 권력에 민감한 자리다. 심하면 심하지, 절대 덜하지는 않다. 2002년부터 관광공사를 출입하면서 모두 8명의 관광공사 사장을 지켜봤는데, 공사 출신은커녕 관광업계 인사가 한 명도 없었다. 정권이 바뀌면 어김없이 관광과 무관한 인물이 내려왔고, 그들은 저마다 ”평소 여행을 좋아했다“며 관광 수장의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안영배 사장은 내가 겪은 ‘낙하산’ 중 가장 강력한 낙하산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홍보처 차장을 역임했는데, 그때 황희 현 문체부 장관과 한형민 문체부 차관보가 청와대 행정관이었다. 안 사장 임기 내내 관광업계에서 “문체부 장관보다 더 센 관광공사 사장”이라고 수군거렸던 이유다. 안 사장은 문재인 정부 ‘개국 공신’이기도 하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모임인 ‘광흥창팀’과 ‘더불어포럼’ 두 곳 모두에서 활동한 몇 안 되는 인사다. 안영배 사장의 4년을 돌아본다. 떠나는 사람을 흉보려는 건 아니다. 조만간 투하될 새 낙하산에 보내는 메시지로 읽히길 바란다.
워라벨 관광공사

2018년 7월 16일 안영배 사장이 임명된 지 약 2개월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 사장이 읽은 취임사 일부다. 이날 간담회는 매우 중요하다. 무성한 소문과 함께 취임한 안 사장이 2개월 만에 언론 앞에 선 첫 자리이자, 안 사장이 임기 4년간 딱 한 번 치른 공식 기자간담회였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 안 사장은 언론과의 공식 접촉을 일절 삼갔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기자실 폐쇄를 주도했던 인물답게 그는 임기 내내 언론을 외면했다. 기자들 항의는 번번이 무시했고, 문체부 관광국장과 관광업계의 조언에도 귀를 닫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취임 1년 만에 쫓겨나듯이 물러났던 변추석 전 사장도 이 정도로 언론과 담을 쌓지는 않았었다. 안 사장이 생각한 소통과 협업의 대상에서 언론은 없었다.
앞서 인용한 구절은 A4 용지 두 장 분량의 취임사에서 마지막 단락을 통째로 옮긴 것이다. 모두 6개 단락으로 구성된 취임사의 결론에 해당하는 글인데, 처음엔 관광공사 사보용 원고인가 의심했다. 신임 관광공사 사장이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관광의 새 비전은 제시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새 직장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워라벨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만 하고 있어서다. 신임 관광공사 사장에게 듣고 싶은 건, 관광공사 임직원의 삶의 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제 직장의 비전과 직원의 삶의 질만 얘기했다. 취임사에서 관광정책 관련 구절은 딱 한 번 등장한다. ‘한반도 관광센터와 관광빅데이터센터를 신설하려고 합니다.’
관광공사에서 안영배 사장의 인기는 역대 최고라 할 만하다. 관광공사 직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역대 사장 중 직원들과 가장 활발히 소통한 사장”이었다고. 적어도 이 대목은 취임사에서 밝힌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안 사장의 남다른 인기에는 소통 말고도 더 큰 비결이 있었다.
코로나 시대 최고의 직장

‘코로나 대유행이 본격화되면서 관광산업은 타 산업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 전체산업 대비 관광산업 사업체의 총매출액은 2016년에서 2019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증가(11.3% → 12.5%)했으나, 2020년에는 11.5%로 감소했고, 2020년의 전년 대비 총매출액 감소율(8.0% 감소)은 같은 기간 전체산업의 감소율(1.1% 감소)보다 7.3배 높았다.’
관광공사가 4월 20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인용했다. 관광공사 자료에서도 관광산업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피해가 다른 산업보다 압도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행업은 손실보상금 지원 대상에서 내내 빠졌다가 대선을 앞둔 지난 2월 포함됐다. 지난 2년간 질병관리청이 날마다 “여행을 자제해달라”고 말했어도 정부가 여행사 영업을 제한하거나 금지한 적은 없었다는 게 제외의 이유였다. 바로 그 시절, 여행사가 줄줄이 문 닫고 여행사 직원들이 배달로 연명하고 여행사 사장들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던 시절, 관광 주무 기관이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2020년 경영평가에서 준정부기관 54개 중 A등급을 받은 건 11개 기관뿐이었다.
이내 성과급 잔치가 벌어졌다. 안영배 사장의 경우 연봉의 40%인 5191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공사 직원들은 보통 월급의 80%가 나왔다. 관광공사가 2년 연속 A등급을 받은 덕분에 안 사장이 2년간 받은 성과급은 1억원이 넘는다. 2021년 경영평가 결과는 다음 달 나온다.
관광업계는 치를 떨었다. 여행사 대표들이 일제히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했고, 한 대표는 “배신감이 든다”는 표현도 썼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일감이 끊긴 한 관광안내통역사는 “누구를 위한 관광공사냐”며 탄식했다. 한 관광학과 교수는 “낙하산의 장점으로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다른 부처와 협력하는 데 꽤 힘을 낸 것으로 안다”며 “관광공사 사장의 파워가 세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문체부 간부는 “관광공사가 A등급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B등급만 받아도 성과급이 꽤 나오는데 대단하다”며 말을 아꼈다. 관광공사는 여행업계의 볼멘소리를 의식했는지, 성과급의 일부를 관광 상품권으로 받았다.
낙하산의 등급

디지털 혁신은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범 내려온다’로 대표되는 한국 홍보 영상이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는 유튜브·페이스북 등에서 9억 뷰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관광공사의 한 고위 간부도 “한국 관광 디지털 홍보에 뚜렷한 성과를 보인 게 경영평가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영상을 기획한 관광공사 직원이 지난해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기록적인 흥행 뒤에 100억원이 넘는 광고비가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제작비(약 22억6400만원)의 다섯 배에 가까운 101억4000만원이 해외업체 광고비로 지출됐다고 폭로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도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영상의 조회 수에서 90% 이상이 유튜브 광고에 의한 트래픽”이라고 지적했다.

손민호(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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