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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한 폭의 그림 같은

오후에 캘리포니아 공항을 내렸다. LA 도심 어디쯤 예약한 집에 도착했다. 튼실한 소년 같은 선인장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하늘거리는 꽃들이 감긴 아치 밑을 지났다. 집의 비밀번호를 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길 건너편에서 다가온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선생님.”
 
“수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쩐 일로?”  
 
반가워하는 나에게 묵직한 상자를 내민다. 아들과 며느리는 컨테이너에 담긴 미역국, 카레, 오뎅국, 김밥, 만두 등을 보더니 입이 떡 벌어진다. 뉴저지에 살다가 이사 간 소영이 어머니다. 오늘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선행’을 내가 삼십 년 전에 했던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선물 받았던 구슬이 달린 초록색 스웨터 생각이 났다.  
 


꼬마들은 허기가 해결되자, 아이패드를 들고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아기 천사의 뚱뚱한 얼굴이 벽에 걸려 있고, 노랑 빨강의 접시들이 부엌 진열장 위에 놓여있다. 스페인 산골 어디쯤, 인적이 드문 곳의 순례객들이 남기고 간 것처럼, 팬트리에는 파스타 국수, 통조림 캔, 커피가 온 박스로 남아 있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치이익’ 소리를 내더니, 거품이 살짝 덮인 커피를 내려준다. 잘 곳에 먹거리까지 기다리고 있는 이번 여행이 특별한 선물처럼 여겨졌다.  
 
삼 일째는 아들네와 따로 다니기로 했다. 남쪽으로 두 시간을 내려가니, ‘세인트 새크라멘토’ 사인이 보인다. 산 중턱에 빨간 지붕들이 듬성듬성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이 나타난다. 핑크 꽃이 잔디처럼 깔린 경사진 정원 위로 친구의 집이 우뚝 솟아있다. 아들이 사 준 집이라고 한다. 독신을 고집하는 아들과 딸이 번갈아 주말 하우스처럼 내려온다고 한다. 아들은 장 봐 와서 요리하고, 딸은 묵은 음식과 오래된 화장품까지 ‘정리’하고 간다는 것이다. 통유리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방에 피아노가 놓여있다. 악보를 슬쩍 보니 즉흥 교향곡이다. 부러움의 감탄을 연발하는 나에게, 애들이 무슨 ‘감독관’ 같다고 하는 친구의 말이 자랑인지 불평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빈 그릇을 찾으러 온 소영이 어머니는 공항에서 먹으라며 빵 봉지를 내민다. 삼십 년 전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그녀 주위에 있는 듯했다. 두 딸에 사위, 손주도 챙기고, 팬데믹 중에는 교회 노인들에게 음식을 해서 집으로 갖다 드렸다고 한다. 이번에 내게 해 준 음식쯤은 일도 아니라고 한다.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고, 밤에는 성경 공부하고, 주말에는 얼마나 많은 친구가 북적댈 것인가? 나처럼 찾아오는 손님도 있을 것이고… 그녀가 움켜쥐고 있는 호스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분수가 뿜어 나온다. 감격의 물줄기는 사방으로 퍼져서, 주변조차도 정화되는 듯하다.  
 
새크라멘토의 친구는 물이 똑똑 떨어지는 수도를 직접 고쳤다고 자랑했다. 집 안을 정리하다 못해, 사람들까지도 정리한 것일까? 관계가 골치 아프다고 했다. 원형 창문으로 태평양의 일몰을 감상하고 있을 그녀가 떠오른다. 벽에 걸린 그림 같은 그녀가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웬일일까.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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