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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개월만에 5%대 육박한 소비자물가…금융위기 수준 다다랐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에 근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물가가 치솟았던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대선 전까지 억눌러왔던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되기 시작하면서 물가 상승 폭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저물가로 인한 기저효과가 반영됐다는 설명도 이제 힘을 잃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물가·환율 모두 높아
3일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8%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4.8%) 이후 13년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2008년과 마찬가지로 환율 급등(원화 약세)이 동반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67.8원으로 마감했다.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엔 1191.8원이었는데 6.4% 올랐다(원화값 하락).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가격을 높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물가 상승은 3월과 마찬가지로 석유류 등 공업제품과 외식을 중심으로 한 개인서비스가 견인했다.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 품목의 물가 상승률 기여도는 각각 2.7%포인트, 1.4%포인트다. 전체 물가 상승률(4.8%)에서 4.1%포인트를 차지한다.

전기·가스요금 인상까지 덮쳐
상품별로 보면 석유류(34.4%)와 가공식품(7.2%)을 비롯한 공업제품 가격이 1년 전보다 7.8% 올랐다. 공업제품 중에선 치약(10.4%), 비누(14.1%) 같은 생필품부터 국수(29.1%), 식용유(22%) 등 가공식품까지 광범위하게 가격이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곡물 가격 인상이 반영되면서다.

한국전력이 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 등을 상향하면서 지난달 전기요금 상승률은 전년 대비 11%에 달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가스 요금 인상 여파까지 겹치면서 전기·가스·수도 물가 상승률은 6.8%를 기록했다. 4년7개월 만에 최고치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 누적에도 대선 전까지 공공요금을 동결해왔는데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공공요금 더 오를 듯
이 때문에 이달부터 전기·가스요금의 추가 인상이 줄줄이 예고돼있다. 이미 지난 1일 주택·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이 평균 8.4~9.4% 올랐고, 7월과 10월에도 인상 예정이다. 한전은 10월 kWh(킬로와트시)당 4.9원의 전기 요금 추가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이날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엔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이 포함됐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전력생산 비용이 증가한 만큼 전기요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요금 인상 시점은 진작에 놓쳤다. 대선 등을 앞두고 정부가 강제로 요금을 동결하다 보니 한전 등의 적자가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라며 “윤석열 정부도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요금 인상 시점을 늦추려고 하겠지만, 올해 하반기 정도엔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속 요금 인상을 누르다간 대규모 정전 사태 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정부 입장에서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개인서비스 물가도 거리 두기 완화로 인한 외식 수요 증가, 원재료 가격 상승 등으로 4.5% 올랐다. 외식 품목은 한식·일식·중식·양식 등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가격이 상승했는데 갈비탕과 생선회는 1년 전과 비교해 10%가 넘게 올랐을 정도다.

8개월 안 올라도 연 상승률 3.9%
지난달 물가지수(106.85)가 올해 내내 더 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지난해 대비 연간 물가 상승률이 3.9%에 달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는 등 물가 상방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올해 물가 상승률은 4%대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4%를 넘기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올라가느냐’가 새로운 문제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는 0~1%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2년4개월 만에 2%대로 올라선 게 지난해 4월(2.5%)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3월까지의 고물가 흐름엔 기저효과도 일정 수준 작용했다. 4월부터는 그 반대인 ‘역기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지만 빗나갔다. 물가 상승 압력이 이전보다 크다는 뜻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하반기로 가면서 역기저 효과와 우크라이나 사태 해소 가능성 등으로 (전망이) 조심스러웠는데 이제 보니 상당폭의 오름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당분간 오름세가 둔화할 요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예고된 추경…“불붙은 물가에 기름”
이 같은 상황에서 차기 정부는 출범 직후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통해 소상공인을 지원할 예정이다. 30조원대 추경은 소상공인에 대한 현금 지급이 골자다. 결국 시중에 대규모로 유동성이 풀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유동성으로 인한 추가적인 물가 상승을 우려한다. 또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장기화하고 있어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추가 상승’의 악순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는 계속 오르는 상황인데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유동성이 늘면 통화 정책의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추경은 물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정부가 시급하게 해야 할 건 미국처럼 임금 인상이 더 가파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순환 상승이 이어지지 않도록 물가 상승 기대심리를 잡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물가 회의
한편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유류세 인하 관련 석유시장점검 회의를 개최했다. 지난 1일 시행한 유류세 30% 인상 조치가 현장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산업부는 재고를 소진하고도 판매가를 제대로 내리지 않는 주유소를 대상으로 담합 등 불공정 행위 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당분간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도입 계약 체결과 사료용 밀·옥수수 추가 물량 확보 등 원자재와 국제곡물 수급 안정화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는 “현재 물가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가계·기업·정부가 3인 4각처럼 힘 모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가계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진호(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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