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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슬픔을 더 슬픔답게 하는 장르"...어머니 상실 담은 시집 낸 김혜순

김혜순 시인의 열 네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는 어머니의 병간호, 사망, 애도를 담은 시를 엮었다. 그런데 책 맨 앞머리 '시인의 말'은 '엄마, 이 시집은 읽지 마'라고 썼다. 시인은 "엄마가 제 시를 어렵다고 했었기 때문에 이번 것도 읽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석 달간 호스피스 시설을 옮겨다니며 병간호한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온통 엄마가 묻어있는 시 79편을 쓰고 묶었다. 그래놓고 책 첫머리엔 "엄마, 이 시집은 읽지 마, 다 모래야"라고 썼다.

새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를 낸 김혜순(67) 시인은 "엄마가 생전에 제 시를 몰래 읽고 '현대 시는 참 어렵다'고 말하고, 다른 시인의 시집을 읽고는 '그 시인처럼 (쓰면) 어떻겠니, 하시곤 해서, (이번 시집도) 읽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간담회에 나선 김혜순 시인. 문학과 지성사

새 시집엔 2019년 시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병간호와 그 이후 애도의 시간이 담겨있다. 제목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는 1부, 3부의 제목이자 3부 수록작 제목이다. 28일 만난 김 시인은 "한글 '달'의 어원이 딸과 같다고 한다. (엄마가 사라진 뒤) 딸은 누굴 돌지? 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코로나19, 전쟁 등의 문제를 말하고 싶기도 해서 전체를 통틀어 제가 말하고 싶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책은 어머니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염하고 입관하는 과정을 시인과 어머니가 지켜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담았던 시인의 전작 『날개 환상통』과 신작을 연결짓는 부분이다.

1부는 어머니의 병간호와 죽음까지, 3부는 어머니를 보낸 뒤 혼자 남은 시인의 마음을 '모래사막'으로 그렸다. '인생의 마지막 필수 항목 세 가지'에서는 빨대, 기저귀, 물휴지를 볼드체로 처리해 꼽고, "병원에 오래 있다 보면 흰색에 질린다"며 '흰색'을 더럽다고 ('더러운 흼') 쓴 건 3주만 지낼 수 있는 호스피스 병실을 옮겨다니며 어머니의 마지막 3달을 밀착 간호한 시인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계속 시설을 전전하며 앰뷸런스에 타는 게 일과였다"고 전한 그는 "2019년에 다 써둔 시를 지난해에 마음먹고 꺼내 책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슬픈 사람은 썩고/아픈 사람은 모래'라고 선언하며 시작하는 3부는 내내 모래, 사막의 이미지가 떠다닌다. 시인은 "시를 쓸 때 늘 사막에 있는 기분이었고, 그래서 오래 쓰지 않고 금방 써냈다"고 했다. 간호하는 동안 치열한 시간 사이 잠깐 비는 시간을 못 견디고 "시간을 때우며" 쓴 1부의 36편에 더해, 어머니의 죽음 이후 43편을 쓰는 데에도 두 달이 채 안 걸렸다.

어머니의 상실로 쓴 책이지만, 인류의 2년을 잠식한 코로나19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외출을 할 땐 얼굴의 구멍을 다 막아라/새 칙령이 공표된 지 2년이 지났다/얼굴도 이제 벌거벗을 수 없다'('셧다운') 등 코로나19 시기를 담은 다섯 편은 2부 '봉쇄'에 담았다. 시인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같은 병에 걸리는 상황은 생애 처음 겪는다"며 "이 병 하나로 지구 전체와 연결되고, 전쟁의 여파도 우리에게까지 오는 걸 보면서 '이렇게 지구를 두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지구의 인간은 멸종할 것이라고 보고, 새나 공룡이 남겠죠. 산책하면서 언제나 '인간이 없는 지구'를 생각하면서 걷는다"는 시인은 지구어머니의 큰 얼음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내가 모르는 것처럼('더러운 흼'), 아기를 더 이상 낳지 않는 나라가 있었다('체세포복제배아') 등으로 어두운 미래를 얼핏 썼다.

그러나 이 시집은 "치유와 위로를 위한 시는 아니다"라고 시인은 잘라 말했다. 그는 "시는 문제를 더 문제답게, 불행을 더 불행답게, 슬픔을 더 슬픔답게, 파괴를 더 파괴답게 하는 장르"라며 "시를 써서 치유와 위로가 된다면 매일 쓰겠죠. 위로하려면 수필, 산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에 실리고, 덴마크에서 책 내는 한국 시인
지난 21엔 김혜순 시인의『날개 환상통』이 영어로 번역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렸다. NYT 홈페이지 캡쳐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입상한 뒤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을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은 1992년 소월시문학상, 1996년 김수영문학상('불쌍한 사랑기계'), 2006 미당문학상, 2008년 대산문학상, 2022년 삼성호암상 예술상 등을 받았다. 여성 존재와 죽음 등을 꾸준히 다뤄왔고, 이번 책은 그의 14번째 시집이다. 해설은 시인이 박준상 숭실대 철학과 교수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시인은 "그 분이 모리스 블랑쇼(프랑스 작가)에 도통하신데 그걸 즐겨 읽으신 분은 제 시를 어떻게 읽으실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혜순 시인은 동시대 작가 중 해외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번 시집에 쓴 '우리나라의 여류 시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묻는 아시안이 있다. 그래요, 우리는 그렇게도 불렸어요. 여자에게 따로 이름을 붙이는 자들이 있었어요. 내가 대답한다'('피카딜리 서커스')도 런던에서 낭독회를 열었던 시인의 경험담이다.

지난 21일에도 '고잉 고잉 곤'(『날개 환상통』수록작)이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번역돼 실렸다. 이 시를 골라 실은 빅토리아 챙은 "죽음과 슬픔을 반복적인 ‘새’의 이미지로 구현해, 시인이 부친을 잃은 뒤의 슬픔을 초현실적으로 묘사한다"고 평했다. 2019년엔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국제부문), 2021년엔 스웨덴에서 동아시아권 시인에게 주는 시카다 문학상을 받았다. 올해 초에도 덴마크에서 '죽음의 자서전'이 발간돼 북토크를 진행했고, 딸이 만들어 준 '시인 김혜순(www.poetkimhyesoon.com)'이라는 주소의 홈페이지에는 시인의 작품과 저서들을 영어로 번역, 정리해 아카이빙도 해뒀다. 한국계 덴마크 시각예술가 제인 진 카이센(42)이 그의 2019년 시집『날개 환상통』의 2부 제목인 '작별의 공동체'로 만든 작품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가기도 했다.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는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해외에 소개되고 상을 받은 시인"이라고 김혜순 시인을 소개하며 "김혜순의 시를 읽는 것은 세계 독자들과 함께 있는 동시대성을 주고, 한국문학의 시간이 거의 세계 시간에 맞춰지며 시차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내년엔『날개 환상통』의 영어 번역본도 낼 예정이다.

시인은 어머니의 작고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했다. 최근엔 숨 쉬면 '휘~휘~' 소리가 날 정도로 목이 고통스럽게 붓는 코로나19를 지독하게 겪었다. "정신적인 고뇌는 소통할 수 있지만, 육체의 고통은 나눌 수 없다는 걸 느꼈다"는 그는 "아무 계획도 없고, 늘 닥치면 쓰고, 안 쓸 때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정연(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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