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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폭동 30년] ③ "'낫 길티' 다급한 목소리, 폭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LA 폭동 산증인 장태한 교수 "그날 아메리칸드림은 잿더미가 됐다" "다인종 미국 사회에서 한인 정체성 확립 계기…정치력 신장 중요"

[LA 폭동 30년] ③ "'낫 길티' 다급한 목소리, 폭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LA 폭동 산증인 장태한 교수 "그날 아메리칸드림은 잿더미가 됐다"
"다인종 미국 사회에서 한인 정체성 확립 계기…정치력 신장 중요"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장태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UC 리버사이드) 교수는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의 산증인이다.
장 교수는 한인·흑인 갈등을 연구 주제로 1990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UC 리버사이드에서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재미 한인 이주사 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장 교수는 LA 폭동 당시 주류 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대응해 한인들이 처한 실상을 미국 언론에 전달하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는 27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30년 전 LA 폭동이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 경관들에 대해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분노한 흑인들이 LA 도심과 한인타운을 점령한 날이었다.

다음은 장 교수와 일문일답.
--직접 겪은 LA 폭동 상황을 설명해달라.
▲당시 제가 있던 대학에서 총장 취임식이 있었다. 취임식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왔는데 문을 열자마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한인 기자가 나에게 '낫 길티'(Not guilty)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킹을 무자비하게 때린 백인 경찰들이 무죄 평결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비상사태로 번질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곧 한인타운은 고립된 상황에서 상점들이 불에 타고 약탈을 당했다. 아메리칸드림이 잿더미가 된 것이다.



--어떻게 해서 한인 사회의 입장을 주류 언론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나.
▲미국 주류 언론은 처음에는 흑인과 백인의 갈등으로 보도하다가 한인 사회가 피해를 보니 시각을 돌렸다. 제가 한흑 갈등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다른 한인 분들이 언어 문제로 인터뷰를 꺼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인 입장을 전달하게 됐다.
--당시 미국 주류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나.
▲한인들은 가게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었다. LA 경찰이 백인 타운을 보호하려고 한인 타운을 무방비 상태로 놔뒀기 때문이다. 도와달라는 절규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총을 든 한인들은 가게 옥상에서 보초를 섰다. 언론은 '루프톱 코리안'(Rooftop Korean), 즉 '총을 든 지붕 위의 한인들'로 집중 조명했고 오히려 폭도 또는 가해자인 양 보도됐다. 주류 언론은 한인 타운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의사소통이 안돼 취재 자체를 못 했다. 역설적이지만, 코리안 아메리칸이 미국 주류 사회에 알려진 계기도 LA 폭동이었다.
--LA 폭동이 미주 한인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LA 폭동은 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정치력 신장에 나서는 전환점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계라는 단일 민족으로 사는 게 아니라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한인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했다. 당시 한인들은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미국에서 우리끼리 오순도순 일하고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LA 폭동은 한인들이 미국 사회의 이방인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고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30년이 지난 현재 LA 폭동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나.
▲현재 LA 한인타운은 인구 구성이 변했고 라틴계가 대부분이어서 한흑 갈등이라는 이슈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라틴계는 한국계와 마찬가지로 이민자들이다. 라틴계는 한인타운 주민이자 상점 고객, 그리고 피고용인으로서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따라서 마찰이 생기더라도 쉽게 해결되곤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인종 갈등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여서 불씨는 언제든 살아있다. 흑인과 백인의 경제적 격차, 흑인 사회의 열악한 교육 여건, 높은 실업률, 경찰의 과잉 진압이 문제인데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게 없다. 뉴욕, 워싱턴, 시카고, 애틀랜타 등지의 한인 상권으로 언제든 인종갈등으로 인한 폭동의 불똥이 튈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이 현안으로 부상했는데.
▲미국에서 아시안 증오범죄는 뿌리가 깊다. 1892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첫 번째 이민 관련 법률이 중국계 이민 금지법이었다. 1924년에는 동양인 이민 금지법도 제정됐다. 1952년까지 한국계 이민자들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할 자격도 없었다. 1965년 이후에서야 이런 차별이 해소됐지만, 미국에서 아시안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 역사가 있었다는 점을 유념하고 증오범죄에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 한인 사회의 도전 과제는.
▲한인 사회가 계속해서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절대 잊지 않듯이 교육의 장을 통해 한인 차세대들이 LA 폭동 의미와 과제를 알고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
--모국인 한국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도 다문화사회로 바뀌고 있다. 한국 다문화 정책은 초보적인 단계다. 어떻게 보면 정책이 아니라 외국인 친구들을 한국인화시키는 것이다. 외국인 이민자들이 그들만의 정체성을 갖고 한국 시민으로 기여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jamin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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