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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4월 수상작] 벚꽃에 빗댄 창작 앓이, 발상 돋보여

장원
벚꽃 퇴고(推敲)
김정애

원고지 빈 여백을 겨우내 궁글리던
청사로 왕벚나무 초장을 쓰고 있다
음이 다 소거된 폭죽으로 후끈 달뜬 몸짓으로

배란 앞둔 여인네 주체 못할 격정 같은
연분홍 도화살이 만개한 4월 근처
모질게 끓고 밝혔다 사그라들 중장 무렵

절정을 안다는 건 허무를 담보하는 것
슬픔 또는 기쁨은 모두 한때 꽃일 뿐
해마다 첫 경험 앓듯 종장을 진술한다

◆김정애
김정애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 2017년 제주일보지상백일장 차하. 2019년 8월, 2021년 8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차상
소금 창고
김현장

짜고도 비릿하게 빛나는 바다의 맨몸
살아온 생채기 보며 하얗게 죽어갔을까
비워낸 그 자리마다
붉디붉은 갯내음

누룩의 꽃처럼 핀 염전 보며 알았다
그리움의 끝단도 여며야 한다는 걸
망막의 실핏줄 속에 바닷물이 스며든다

창고엔 오랜 꿈들 사리처럼 쌓여가고
수차 밟던 시간이 염수처럼 내릴 때
꽃대에 빨간 샐비어
망울망울 피어난다

차하
달고나
황남희

달 속에 별을 박고 별 속에 꿈을 심는
아주머니 손놀림에 한 우주가 탄생한다
얼룩진 유년의 단맛
옛 시간을 더듬는다

위성과 항성 사이 새겨진 생의 윤곽
소다 빛 화상 자국 흑점으로 식어갔다
바늘 끝 닿는 곳마다
생과 사의 갈림길

이달의 심사평
보내온 응모작을 열 때는 늘 기대와 설렘이 있다. 숙독과 논의를 거쳐 장원으로 ‘벚꽃 퇴고’(김정애)를, 차상에 ‘소금 창고’(김현장), 차하에 ‘달고나’(황남희)를 선하였다.

‘벚꽃 퇴고’는 발상의 참신함이 돋보였다. 벚꽃이 개화에서부터 절정, 낙화를 거치면서 순응과 반복을 통해 형성하는 질서에 시조창작의 과정을 입혔다. 대상에 대한 피상적 접근을 경계하고 시어 부림에 좀 더 신중했더라면 두 현상(창작과 벚꽃)이 한 편의 시조에 보다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것이다. 특히 둘째 수는 시어의 미적 가공이 더 필요함을 보여준다.

‘소금 창고’는 “비릿하게 빛나는 바다의 맨몸”이 “사리처럼 쌓여” “오랜 꿈”이 되는, 바닷물이 소금이라는 결정체로 변화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시각적 대비 효과, 후각적 이미지 차용으로 선명도를 높인 점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시적 정서의 형상화에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짜임, 끌어온 시어들의 조응, 시어의 외연적 의미 외에 내포적 의미 부여 등에 고민을 더 해야 할 것이다.

‘달고나’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드라마를 통해 소환된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옛 시간을 더듬는” “얼룩진 유년의 단맛”의 달고나는 순수했던 유년으로의 순간이동을 가능케 한다. 둘째 수에서 “바늘 끝 닿는 곳마다/생과 사의 갈림길” 같은 표현은 보편성 확보에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잘 뽑아 낸 중장을 종장이 이어 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시조는 형식은 전통적이지만 내용은 얼마든지 새로움을 담을 수 있고 또 담아내야 한다. 권규미, 김은희의 작품도 오래 손 안에 있었음을 밝힌다.

서숙희(대표집필), 손영희 시조시인

초대시조
빈집
장지성

고향 집 먹감나무
속잎 틔운
봄 햇살이

바람결 옹알이를
다독이다
같이 잠든

앞마당
토종닭 몇 마리
적막 쪼고 있는가.

◆장지성
장지성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문학’ 3회 추천완료. 시조집 『풍설기』 『외딴 과수원』, 시집 『제목을 팽개쳐 버린 시』 등. 이영도 시조문학상, 월하 시조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사람이 살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향의 빈집에는 손때 묻은 세간살이가 그대로 남아있다. 날마다 쓸고 닦아 햇빛에 반짝이던 툇마루에 먼지가 쌓이고, 특별히 허락하지 않아도 바람과 햇살은 살며시 들어왔다가 말없이 빠져나간다. 담장 밖 골목길에 사람의 기척이 날 때마다 혹시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지 숨죽여 지켜보는 건 앞마당의 적막뿐이다.

주인과 함께 호흡하던 먹감나무 속잎도 따스한 봄 햇살을 받아 싹을 틔우는 봄이다. 이 가지 저 가지에서 새싹들이 삐죽이 고개를 내미는 시기이지만, 인적없는 빈집의 풍경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보드라운 먹감나무 속잎은 바람이 불면 아이가 옹알이하다 이내 잠이 들듯 미세하게 흔들리다 잠잠해지곤 한다. 화자의 눈은 먹감나무 속잎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관찰한다. 빈집에서 ‘바람결’과 ‘옹알이’를 읽어내는 시인의 언어는 그물망이 섬세하고 촉촉하다.

아직 사람 냄새가 가시지 않은 빈집에는 주인의 존재와 부재를 생각하지 못하는 토종닭들이 앞마당을 서성이다가 봄 햇살에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먹감나무 속잎과 함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양이다. 앞마당에도 적막이 찾아든다. 먹감나무 속잎과 앞마당 토종닭이 함께 잠든 뒤에야 비로소 빈집의 적막을 실감한다.

빈집의 속내와 흘러간 시간과 세세한 사연을 풀어놓는 것은 허망하다. 누군가 살다 떠난 그 집의 이야기는 실꾸리에서 실이 풀어지듯 언젠가는 풀려나와 다시 우화로 엮어질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봄 햇살에 싹을 틔우는 먹감나무 속잎과 바람결에 옹알이하듯 함께 조는 앞마당 토종닭을 보여줄 뿐이다. 그곳에 드리우는 적막은 외롭고 고요하다. 그 적막에 빗금이 가듯 금방이라도 누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 그동안 잘 계셨는지 안부를 물을 것 같다. 빈집을 보는 시인의 눈길이 다시 적요롭다.

김삼환(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중앙 시조의 e메일(j.sijo@joongang.co.kr)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 할 수 있습니다. 등단하지 않은 분이어야 하며 3편이상, 5편 이하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02-751-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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