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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값 다 치솟는데, 쌀값은 계속 추락…농가 '이중고’

전남 고흥군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선호(53)씨. 농가 분위기는 한 마디로 “초상집”이라고 했다. “비룟값은 정부 보조금을 제하고도 80% 올랐고, 면세유도 마찬가지다. 인건비도 올라서 일당 17만원을 준다고 해도 사람이 없어 못 구한다. 그런데 쌀 가격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벼농사 35년째인데 올해같이 힘든 상황은 처음이다.”
쌀값 바닥 없는 추락.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쌀값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2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유통정보(KAMIS) 따르면 도매시장에서 쌀 20㎏ 상품은 지난 25일 기준 평균 4만9600원에 거래됐다. 한 달 전보다 4.3%, 1년 전보다 15.5% 내린 가격이다.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쌀 가격은 5만원대 중후반을 유지했다. 쌀값이 꺾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수확기부터다. 가파르게 하락하더니 이달 말 5만원 선까지 깨졌다. 2020년 8월 이후 가장 낮았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다른 곡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것과 반대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선물 가격을 기준으로 전년 대비 밀 43.4%, 옥수수 21.6%, 대두 10.6% 등 값이 일제히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이상 기후 등이 맞물려서다.

전 세계 주요 곡창지대의 작황 부진으로 공급량이 줄었고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외국에선 쌀 가격도 급등세다. 국제곡물이사회 통계를 보면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산 쌀(중립종)은 t당 1286달러에 거래됐다. 1년 전과 비교해 29.9% 비쌌다.
지난 2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한 농민이 '쌀값 보장' 머리띠를 두르고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산 쌀 가격만 거꾸로 내려 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소비는 줄고 있는데 생산량은 크게 늘어난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쌀 생산량은 388만2000t으로 전년 대비 10.7% 증가했다. 작황이 좋았다. 벼 낟알이 생겨나고 여무는 시기에 일조량이 좋아서 10a당 생산량은 1년 전보다 9.8% 증가한 530㎏을 기록했다. 지난해 벼 재배 면적도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전년비 0.8%)했다. 정부가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는 사업(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을 2020년 종료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쌀 수요는 늘어난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쌀 소비량은 1인당 56.9㎏으로 전년 대비 1.4% 줄었다.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데 최근 5년 사이 8% 가까이 줄었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비룟값, 인건비, 농기계용 유류비 등 생산 비용은 치솟고 있는데 쌀 가격은 도리어 내리면서 국내 농업 ‘뿌리’인 벼농가 피해가 커지고 있다.

농민단체는 정부가 시행 중인 쌀 시장격리(시중 쌀을 정부가 사들여 가격 안정을 유도) 제도가 오히려 가격 불안을 가중시켰다고 비판한다. 지난해 수확기 전후부터 쌀 생산량 급증을 경고했는데도 올해 들어서야 늑장 격리에 들어갔고,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쌀을 매입한 탓에 시장 가격 추가 하락까지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다른 물가가 급등하자 쌀값을 올리는 조치에 정부가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농가 불만이 크다.
김기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대변인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쌀 시장격리 관련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021년산 쌀 초과 공급 물량 27만t 중 잔여 12만5000t에 대해 추가로 시장격리 조치를 취할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은 27일 당정 협의를 열어 추가 쌀 시장격리에 대해서 논의할 예정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6일 민주당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근본적 쌀 수급 안정 방안 마련 정책 토론회’에서 “단일 품종 쌀, 계약 재배 확대 등으로 쌀 품질을 제고하고 가공용 쌀 수요 확대, 논 활용 다양화 등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현숙(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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