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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때리는 명대사 입소문, 인생드라마 또 탄생…최고 명장면은

 JTBC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염미정(김지원)이 공허한 삶을 견디다 못해 외지인 구씨(손석구·왼쪽)에게 “날 추앙해달라”고 하는 장면은 작품 최대 명장면으로 꼽힌다. [사진 JTBC]

JTBC ‘나의 해방일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다. 경기도 산포시라는 가상 도시에 사는 삼남매 염기정(이엘), 창희(이민기), 미정(김지원)은 서울로 출퇴근한다. 밥 먹고 술 마시며 신세 한탄하다가 또다시 서울로 출퇴근한다. ‘경기도민은 인생의 20%를 대중교통에서 보낸다’는 ‘웃픈’ 현실이 드라마에도 적용된다. 그나마 아버지 일을 돕는 미스터리한 외지인 구씨(손석구)의 등장이 텁텁한 삼남매 일상 속 최대 변수다.

극적인 사건이 없는 ‘나의 해방일지’의 초반 시청률은 2%대였다. 하지만 tvN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등 박해영 작가의 전작들이 그랬듯, ‘나의 해방일지’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입소문을 타면서 24일 방영된 6회는 자체 최고 시청률인 3.8%(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일상의 평범한 고민을 세밀하게 담아낸 장면과 대사는 “인생 드라마가 또 탄생했다”는 시청자 반응을 끌어냈다.

◆“날 추앙해요”=막내 미정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늘 조용히 웃지만 속은 까맣게 탄 지 오래다. 회사가, 동료가, 팀장이 모두 버겁다. 여기에 빚은 미정에게 떠넘기고 떠난 애인까지. 미정은 어느 날 속으로 ‘지쳤다’고 선언하고는 말없이 술만 마시는 구씨를 찾아간다.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 구씨가 사전을 찾아볼 정도로 의미도 생소한 ‘추앙’이란 단어에는 누군가의 무조건적 지지를 통해 “한번은 채워지고 싶은” 절박함이 담겼다. 그렇게 미정은 ‘해방’의 첫발을 뗐다.

◆“쉬는 말이 하고 싶어”=첫째 기정은 자신에게만 이성적인 관심을 갖지 않는 직장 상사에게 대놓고 이유를 묻는다. 또 자신에 대해 “진돗개 같다. 배신 안 때리고 쭉 남자를 지킨다”고 어필한다. 그런 기정이 핏대도 세우지 않고 한숨 쉬듯 이렇게 내뱉는다. “존재하는 척 떠들어대는 말 말고, 쉬는 말이 하고 싶어. 사실 나 남자랑 말이 하고 싶어.” 이것저것 재며 남자를 만나온 기정은 이제 ‘아무나 사랑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말은 그만큼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절규다. 그런 기정이 말이 통하는 애 딸린 이혼남 조태훈(이기우)을 만난다. 정말 재지 않고 사랑에 몸을 던질 것인지, 갈림길에 섰다.

◆“아버지는 인생을 계획한 대로 사셨습니까?”=편의점 영업직원인 창희는 경기도를 ‘계란 흰자’(서울은 노른자)에 비유하는 여자친구로부터 “견딜 수 없이 촌스럽다”는 말과 함께 이별을 맞이한다. 조건 따지는 데 질린 창희는 새롭게 다가오는 여자에게도 “내 주제 빤하다”며 등을 돌렸다. “긴 세월 아무 계획 없이 살 거냐”고 타박하는 아버지한테 울컥한 창희는 “아버지는 인생을 계획한 대로 사셨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애들한테 꿈이 뭐냐고 묻는 게 제일 싫어. 꿈이 어딨어? 수능 점수에 맞춰 사는 거지.” 창희의 항변은 열심히 계획 세우고 살아도 목표는 늘 저 멀리 달아나는 20·30세대의 갑갑함을 대변해준 대사로 공감을 얻었다.

◆“한 번도 안 해봤던 걸 하면 다른 사람이 된다”=다짜고짜 ‘추앙’을 요구한 미정에게 구씨는 “추앙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게 확실한 거냐”고 묻는다. 이에 “한 번도 안 해봤을 거 아니에요. 난 한 번도 안 해봤던 걸 하고 나면, 그 전하고는 다른 사람이 돼 있던데”라고 받아친 미정의 대답도 위로가 되는 명대사로 꼽힌다. 미정의 말처럼 누군가를 ‘추앙’, 즉 응원하며 한 계절을 보낸다면 그 계절의 끝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간 한 번도 채워진 적도, 타인을 채워줘 본 적도 없던 두 사람은 결국 팍팍한 삶의 해방구로서 서로를 추앙하기로 마음먹는다.

◆“소몰이하듯 나를 끌고 가요”=“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하듯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 그렇게 하루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구씨와 미정은 함께 있을 때 조금씩 말이 많아진다. 속내를 쉽게 내보이지 않는 미정이지만, 구씨 앞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삶이 즐겁지 않았다” “80년 인생을 8년으로 압축해 살아도 하나 아쉬울 거 없을 거 같다”고 털어놓는다.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는 미정의 태도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고 보는 이를 안도하게 한다. 생전 소주 이외의 것은 산 적 없던 구씨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건네는 장면은 “그 어떤 로맨스보다 설렌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나의 해방일지’를 “드라마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공 평론가는 “최근 쏟아졌던 장르물은 볼 때는 통쾌하지만, 끝나고 나면 피로만 남는 측면이 있다”며 “현실을 솔직하게 그리는 작품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이어 “작가의 전작 ‘나의 아저씨’가 그랬듯 종영 후에 전체를 곱씹어보는 시청자가 많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수현(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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