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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대학 교수 시절, 하나님과는 가장 멀었다"

LA 방문한 김 데이비드 우크라이나 선교사

잘나가던 그때가 '하나님'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시절이었다. 김 데이비드(62) 선교사는 세상 가운데 있었던 시절을 그렇게 표현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사역하는 김 선교사는 현재 LA에 와있다. 지금은 전쟁 때문에 그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LA지역 JJ그랜드호텔에서 교계 관계자들에게 우크라이나 현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본지 4월15일 A-26면〉  
 
김 선교사는 교수 출신의 선교사다. 1987년 UC버클리로 유학을 와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기계공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선교사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오는 25일 폴란드로 떠난다. 전쟁이 끝날때까지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 폴란드에서 사역하다가 다시 키이우로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18일 김 선교사를 만나 신앙 이야기를 들어봤다.
 
밑바닥 가보니 하나님 알게 돼
돌이켜보니 교수 사직 잘한 일
 
과거에는 '나' 살 찌우려 살아
지금은 하나님 하실 일 기대해
 
제자 양육은 예수님의 소원
큐티는 간단하게 '말 하나'로
 
-교수에서 선교사가 됐다.
 
"교수로서 은퇴한 게 40세였다. 원래는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나름 신앙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까 이론으로만 알고 있더라. 그분을 만나고 나서 이름도 김성원에서 김데이비드로 바꿨다."
 
-왜 데이비드인가.
 
"박사가 본래 '닥터' 아닌가. 나는 'DK(David Kim)'를 내 삶에서 이렇게 세 가지로 규정한다. 처음은 내가 내 삶을 위해 박사가 되고자 40세까지 성공을 쫓았던 닥터 김 이후 하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사는 데이비드 김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그분을 따라 '키이우(Kyiv)'로 간 데이비드라고 여긴다."
 
-어떻게 다시 깨닫게 됐나.
 
"교수로 6년간 활동하고 안식년을 보내려고 미국에 왔었다. 그때 가정사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말로 다할 수 없지만 인생에서 맨 밑바닥까지 갔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자살까지 하려고 했다. 실제 내 삶을 돌아보니 그제야 내 안에 하나님이 없었다는걸 알았다."
 
-교수직은 왜 내려놓았나.
 
"세상적으로 보면 그때 가장 잘나갔다. 돈도 잘 벌고 고대 교수라고 하면 나름 존경도 받고 그런 게 있었다. 그때는 술 먹고 연구하고 계속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았다. 다시 한국으로 가서 그런 삶을 산다는 게 죄 가운데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신앙을 이론이 아닌 삶으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잘한 선택이 바로 교수를 그만둔 일이었다."
 
-주변에서 만류했을 것 같은데.
 
"최근에 고대 총장 이랑도 통화를 했었다. 나랑 같이 학교에 들어갔던 동기다. (웃음) 당시 주변에서도 다 뜯어말렸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까 그런 게 다 중요하지 않더라. 그래서 하나님을 따르게 됐다."
 
-하나님을 만나니 무엇이 좋은가.
 
"걱정이 없고 평강이 있다. 예전에는 일이 터지면 '어떡하지' 하면서 걱정부터 했다. 하나님을 알고나니 그분은 다 계획이 있더라.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일이 터지면 '하나님이 뭔가 하겠다' 하며 기대가 생긴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하는 게 기도이고 신앙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나를 살 찌웠다. 내가 열심히 하려 했다.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한다."
 
-왜 선교사가 됐나.
 
"어느 날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사야서 58장11~12절에서 은혜를 받았다. '네게서 날 자들이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울 것'이라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이 계속 선교에 대한 마음을 품게 했다. 나중에 ANC온누리교회에서 선교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선교지 소식을 듣는 중에 '하나님 제가 갈게요'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처음에 카자흐스탄으로 갔다. 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채용돼 낮에는 교편을 잡고 퇴근 후에는 아내인 김수잔 선교사와 함께 현지에서 제자 양육 사역을 감당했다.)
 

-어떤 사역을 감당하나.
 
"현지에서 선교사 목회자들과 함께 일대일 제자양육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그곳의 리더들과 먼저 교류해서 그들이 현지인들을 양육하게 하는 방식이다. 아내는 여성을 대상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큐티 사역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삶으로 인도하는 일대일 제자양육'이라는 책도 냈다. 각 지역 선교사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해서 태국어로도 번역됐고 현재 영어 번역도 진행중이다."
 
-우크라이나로 어떻게 가게 됐나.
 
"카자흐스탄으로 갈 때도 그때 국제학교에서 나보고 '꼭 필요하니 와달라'고 했었다. 나는 그것을 사인으로 본다.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던 건 2014년 크림 전쟁 때다. 그쪽에서 꼭 와달라고 했는데 전쟁이 터지고나니 자리가 많이 나더라. 대기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나면서 수도 키이우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제자 양육과 큐티 세미나를 중점으로 두고 사역하고 있다."
 
-제자 양육을 정의한다면.
 
"제자를 양육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소원이다. '내 양을 치라'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제자 양육을 하면 성도가 살아난다. 즉 양육하는 사람도 살아나고 양육을 받는 사람도 살아난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 교회들이 힘들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살아날 수 있는 이 제자 양육의 비밀을 실제 해보는 거다. 그러면 살아난다."
 
-큐티(quiet time)는 어떻게 하나.
 
"나는 큐티를 '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단 간단하게 시작하면 된다. 성경 말씀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 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다면 한 줄 그것을 오늘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한 줄 정도 써보면 된다. 성도들이 큐티를 너무 잘하려고 한다. 길게 하려고해서 문제다. 그래서 어려워한다. 접근하는 방법을 바꾸면 된다."
 
▶김데이비드 선교사 이메일: yesupraise@gmail.com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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