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소외된 아시안, 거침없는 욕망의 질주
파리 13구(Paris, 13th District)
세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그들은 사랑으로 얽혀 있는 관계들이다. 파리라는 가장 현대적인 도시, 그 도시 안에서 가장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지역 13구에서 펼쳐지는 네 사람의 사랑 이야기.
대만계 이민자 에밀(루시 장)은 룸메이트 광고를 보고 찾아온 남자 까밀(마키타 삼바)과 즉석에서 캐주얼 섹스를 한다. 그리고 룸메이트가 된 그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까밀은 에밀의 사랑이 부담스럽다. 그는 사랑이 뭔지 모른다. 대신 섹스에만 몰입한다.
32세의 복학생 노라(노에미메를랑)는 외모가 온라인 포르노 스타인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학생들로부터 성적 모멸감을 당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까밀이 일하는 부동산 회사에 에이전시로 취직한다. 까밀은 노라를 원한다. 노라는 까밀과 데이트를 즐기지만 무언가 서로에게 부재하는 것이 있음을 알고 까밀을 떠난다.
노라는 사랑을 원한다. 그러나 사랑이 두렵다. 자신과 닮은 앰버 스위트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 까밀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그 무엇. 두 여자는 서로를 연민한다. 설렘 속 다가온 첫 오프라인 만남에서 키스로 호흡을 불어넣는다. 그러는 사이 까밀은 에밀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쟈크 오디아르드 감독은 ‘위선적 영웅’(1996)과 ‘예언자’(2009) 등의 작품을 만든 거장이다. 그는 주인공들의 누드와 섹스를 모노톤으로 촬영했다. 벌거벗은 몸, 피부의 촉각까지. 무심하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렌즈는 소외된 파리지엔느의 섹스와 욕망에 다가간다.
오디아르드의 모노톤은 극도로 현대적인 대사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가 그리는 현대의 사랑은 대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왠지 불안하다. 자기감정에 지독히도 솔직한 네 사람이 각자의 사랑을 찾아가지만 ‘파리, 13구’에는 그들이 갈구하는 사랑은 선뜻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섹스 파트너를 찾는 것일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후 만나는 메를랑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노라의 대담함과 불안함, 그리고 은밀함이 그녀의 연기 안에 살아 있다. 루시 장의 뭉클한 연기 또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파리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외로움이 가려져 있다. 파리와 네 사람의 삶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섹스로 시작하고 나중에 관계를 생각한다. 거침없는 그들의 솔직함을 보면 ‘썸타기’는 오히려 시간 낭비다. 파리는 언제나처럼 그리고 여전히 사랑을 믿는 도시이기에.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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