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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가자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 그 유명한 T. S. Eliot ‘황무지’의 시작이다. 그가 말하는 황무지보다 더 황량하고 험한 세상을 지난 2년 이상 잘 견뎌오다 이번에 쓰러졌다. 코로나19가 무섭게 창궐하던 2020년 3월은 중환자실의 최전방에서 침상 하나 건너 한 사람씩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고도 전염되지 않고 무사히 견뎌 ‘Super Hero’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개나리가 지천에서 해맑게 웃고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춤을 추는 찬란한 봄날에 본의 아니게 방콕을 하게 되었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가자. 내가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단 말인가. 밀린 잠을 실컷 자고 밀린 책들을 실컷 읽자. 그러다 운이 좋으면 좋은 글을 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일요일 근무하는 중에 몸이 후끈거리며 목이 아프고 뼈마디가 쑤셔왔다. 아! 이게 바로 코로나 증상이구나 하는 확신이 갔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과 함께 검사한 결과 둘 다 양성이었다. 병원에서는 공식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해서 Urgent Care에 갔다. 양성을 확인한 후 서류를 접수하고 5일간의 휴가를 받았다. 이 얼마 만에 가져보는 꿀맛인가. 
 
딸네의 에피소드는 드라마틱하다. 사위가 캐나다 몬트리올로 1박 2일 비즈니스 트립을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탑승을 위한 PCR에서 양성으로 판정 났다. 탑승을 거부당해 당황한 사위는 렌터카를 해서 밤새 8시간을 운전해 새벽 3시에 집 근처 호텔에 투숙했다. 증상은 목이 아프고 기운이 없다고 했다. 부지런히 음식을 배달했다. 원래 계획은 5일간 호텔에서 격리할 생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흘째 되던 날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던 딸아이가 양성이란다. 그 날 우리 집에는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딸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집에 데려다 놓고 사위에게 연락을 하니 즉각 호텔에서 철수했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당장 딸을 방에 격리한다. 본인도 아픈 상태에서 두 애를 돌보고 아내와 자신까지 돌보아야 하는 완벽주의자 사위가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우리 집에서는 서울에서 오신 손님이 배탈이 나 음식준비에 조금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밤 8시, 문자가 뜬다. “엄마 나 너무 배고파, 12시에 점심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어, Dan은 나의 존재를 잊어버린 거 같아,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 완전히 감금당했어! OMG! 젖은 눈을 닦으며 부랴부랴 음식을 남편을 통해 전달했다. 다시 문자가 뜬다. Dan이 방금 박스에 물 8병, Nyquil, Vitamin C를 담아 뒷마당을 통해 딸이 머무는 방의 창문으로 들여 밀었다. 사위는 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투를 한 것이다. 그 뒤로 딸은 5박 6일 외로운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두 아이는 방과 후 엄마의 부재를 절감한다. 5살의 아들은 이 상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겨우 읽고 쓰기를 시작한 그는 날마다 love note를 문 밑으로 배달한다. 아주 감동적이어서 훗날 내가 그 노트를 모아 ‘코로나의 흔적’ 정도로 작품화할 계획이다. 2살 난 손녀는 분명 엄마 목소리는 들리는데 왜 만나면 안 되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이 앙증맞다. 사위의 철저한 관리로 두 아이는 지금도 음성이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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