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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설이홍과(雪泥鴻瓜)

‘설이홍과’라는 말은 눈밭에 기러기가 날아가면 발자국이 남는다는 말입니다. 눈밭에 기러기의 발자국이 뭐 대단하겠습니까만 그래도 한동안 내가 왔다 갔다는 흔적이 남는다는 말이겠지요. 묘지에 가면 비석들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석에는 이름과 간단한 행적이 적혀있습니다. 그것이 설이홍과입니다. 뉴올리언스에 가면 시내에 묘지가 있는데 프랑스식, 유대교식, 스페인식의 묘지들이 있고 그 앞에 가족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어느 책에 많은 위인의 묘비명을 적어 놓아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요새는 묘지로 쓸 땅이 적어져 대개는 화장하고 맙니다. 한국에서도 화장의 비율이 70%가 넘는다고 하니 죽어서 묻힐 땅이 없다고 하고 한탄을 하던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오래전 마케도니아의 박물관에서 필립 2세(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의 유골을 보았습니다. 유리장에 전시해 놓았는데 키가 작아 나만큼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체구였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가서는 앙바리드 사원을 지나가면서 나폴레옹의 무덤이 저 밑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양 역사의 큰 파도가 되었던 나폴레옹도 죽으니 크지도 않은 앙바리드 사원의 지하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땅이 넓어 그런지 러시아의 무덤들이 큼직하였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무덤이라는데 그 앞에 큰 동상이 있는 것을 보았고 차이콥스키, 안톤 체호프, 푸시킨의 무덤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워싱턴에서 좀 떨어진 곳의 조지 워싱턴의 묘라고 하는 곳은 별로 크지도 않고 비석도 변변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존 F. 케네디의 무덤도 자그마한 평토이고 그 앞에 영원한 불이라는 것이 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 어떤 자국을 남기면 좋을까요.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미라를 남겨두어 유리 상자에 넣은 채 주석궁 속에서 전시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Ash to ash. dust to dust 라는 성경 말씀대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이 요새 사람들이 간혹 토론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대전에 있을 때 부여의 고분을 구경한 일이 있습니다. 어느 왕의 고분이었는데 일반에게 개방하였습니다. 물론 유해는 없고 전시물들이 몇 점 놓여 있고 앞의 전시판에는 고분의 건축년도와 구조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정작 무덤의 주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용산구 보광동에 살았습니다. 그때 보광동에는 털이 없는 작은 복숭아밭이 있고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주인이 없는 묘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희가 이사한 후 일이년이 되었을 때 도시개발을 한다고 공동묘지를 이전하라고 했습니다. 묘지 앞에 공고판이 부쳐지고 신문 한구석에 공고가 났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공고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가 한두 달 있다가 묘지를 하나하나 파지도 않고 불도저가 와서 산을 깎아버렸습니다. 거기를 지나노라면 해골과 뼈들이 불도저로 밀어붙인 흙더미 사이에 굴러다니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묻혔던 많은 사람의 영혼이 보았다면 어쨌을까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주석궁의 유리 상자에서 전시된 김일성과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완전히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차이가 있을까요. 얼마 전 여행 가서 사진 찍으며 친구가 던진 말이 생각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사진을 남기는 거야. 화장해서 뿌리면 다음 날 가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거든.” 기러기가 날아간 자리가 되겠지요.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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