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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젠 묻지 않기로 해

신호철

신호철

“잘 가”
내게 굴레 씌웠던 모든 것들아
나는 뒤돌아 서며 말했다
고개를 드니 별들이 쏟아졌다
밤 하늘 아래 나무들은 깨어 있었다
“이리 와, 내 옆에 앉아”
나무는 잔가지를 흔들며 반겨 주었다
떨림이 깊을수록 따뜻했다


울타리 없는 자유에 눈물을 훔쳤다
사람이 아니어도 위로가 되네
눈을 드니 별들의 하늘, 땅 위 나무들
반짝이며, 온 몸을 흔들며 반겨주는
 
 
“잘 지내지?”
지금쯤 잠 들었을 너에게 간다
이젠 묻지 않기로 해
바람에 출렁이는 가지 끝
그 끝에 매달린 위태로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네 속에 내가 남아 있는지
지나는 시간 속에 한번이라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이젠 묻지 않기로 해
오늘은 나에게, 또 너에게
어느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으로 걸어온
텅 빈 언덕에서 홀로 펼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웃는 표정을 잃어버린
수줍음에 시선을 아래로 떨군
자기 소개가 끝나기 전
힐끔 뒤를 돌아본다
꿈이 된 어머니가 손을 흔든다
음악이 흐르고  
떨리는 목소리가 리듬을 탄다
“여기 까지야”
이젠 묻지 않기로 해
흐르는 강물을 보면  
흘러도 흘러도 제자리인데
저만치 달아나 버린 지금까지
 
 
“곧 저물겠지? 무거우니까”
내 마음을 훔쳐간 날
널 담을 수 없을 때는 밤 하늘이지
셀 수 없는 별들을 담고 남은 자리
내 몫이 될 수 있으려나
별 하나로 남겨져 빛나고 싶지만
이젠 묻지 않기로 해
살아가는 이유가 너 라는 것
적극적인 상상력을 부여한 봄
묻어둘 뻔했던 색깔을 되찾은
다른 몸짓과 소리로  
널 기억 한다는 것 아직은 기다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지개를 펴는 그대의 봄
함께 바라보고 싶은 그대의 봄  
밤 하늘, 먼 발치로 깊어만 가는
 
 
 
이른 아침. 출근길로 바쁜 차량을 뒤로 하고 Hogan Park에 차를 대었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걸 보니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나 보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띄였다. 멀리 던진 공을 달려가 입에 물고 되돌아 오는 개들은 주인보다 행복해 보였다. 넓고 길게 펼쳐진 잔디를 지나 숲길로 접어 들었다. 물 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강이 흐른다. 이곳에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알 리 없던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강 기슭 가까이 내려갔다. 잔 물결을 지으며 강은 반짝이며 흐르고 나는 그곳에 오래 서 있었다. 온통 낙서로 덮힌 다리 난간을 지나 한동안 더 깊이 들어간다. 운동복을 입은 청년이 내 옆을 지나쳐 뛰어가고 얼마 가지 않아 노부부가 나에게 “Good morning!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점점 소란함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청년의 푸른 꿈을 안고 시카고에 온 지도 어언 40년을 지나고 있다. 진정 내 삶을 사랑했던가? 강산이 4번 바뀌면 세상을 알아볼 수도 없을 텐데 로렌스길도 포스터길도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바뀐 건 세월의 무게를 떨치지 못한 나 그리고 너 뿐이다. 그저 왜냐고 묻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내 마음을 훔쳐간 모든 것들을 바라볼 뿐, 아직 늦지 않았어요 고개를 들어요. 하늘엔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먼 발치로 깊어만 가는 밤이 깨어 날 지켜보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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