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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태평양전쟁 조선인 '전범' 피해자 배상 67년째 외면

피해단체, 日국회서 집회 열고 제1야당에 법률 제정 재차 요청

日, 태평양전쟁 조선인 '전범' 피해자 배상 67년째 외면
피해단체, 日국회서 집회 열고 제1야당에 법률 제정 재차 요청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됐던 조선인 'BC급 전범'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에서 피해자 단체인 동진회가 결성된 지 1일로 67년이 지났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피해자 명예 회복과 배상 등을 통한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있다.
이날 오후 일본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선 조선인 BC급 전범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법률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를 주최한 동진회의 박래홍(65) 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작년 3월 28일 이학래 동진회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피해 당사자는 모두 돌아가셨다"면서 "그러나 (피해자의) 2세, 3세와 함께 동진회 활동은 계속된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의 선친인 박창호 씨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 군속(군무원에 해당)으로 징집돼 미얀마 등에서 포로 감시원으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뒤 전범으로 몰려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감형돼 15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태평양전쟁 후 상급자의 명령으로 포로 학대 등을 했다는 이유로 BC급 전범으로 분류된 조선인은 148명이며, 이 중 23명이 사형됐다.
이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데도 전범으로 몰려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한반도 출신자들은 1955년 4월 1일 동진회를 결성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약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이학래 전 동진회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17세이던 1942년 일제에 의해 '모집' 형식으로 동원돼 태국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감시 역할을 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BC급 전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약 11년의 구금 생활을 견뎌야 했다.
전범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한반도 출신자들은 복역이 끝난 뒤에도 '일제 협력자'라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조국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이들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외면했다.
일본은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하자 식민지 출신자의 일본 국적을 발탁했다.
1953년부터 옛 일본군 및 군속 출신자에게 지급되기 시작한 연금도 일본 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식민지 출신자는 수혜 대상에서 제외했다.
동진회는 역대 총리 30명에게 서한을 보내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 해결을 촉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1991년 11월 도쿄지방재판소(법원)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소장을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법정 싸움을 벌였지만, 1999년 12월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2008년에는 한국인 전범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안이 일본 중의원에 제출됐지만, 심의도 거치지 않고 폐기됐다.
이날 동진회는 일본의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측에 조선인 BC전범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법률 제정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재차 제출했다.
ho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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