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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정치란 무엇일까

꼭 10년 전인 2012년, 한 언론은 그해의 10대 국내 뉴스 중 하나로 ‘안철수 현상’을 꼽았다. 비록 대선을 완주하지 않고 사퇴하기는 했지만 정치권에 ‘새정치’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평가였다. 기사 해당 단락의 마지막 문구는 이렇다.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새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이후 한동안 새정치는 정치인 안철수의 브랜드였다. 하지만 2012년의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차츰 새정치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게 도대체 뭐냐고.  
 
나중에는 여러 사람이 직접 “새정치가 뭡니까” 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나 답변을 듣고 명쾌한 그림이 그려진 적은 한 번도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든가, 민생을 우선하자든가, 실천이 중요하다든가 하는 설명을 듣고 뭐라고 반응해야 할까.  
 
그러는 사이 정치인 안철수는 새정치의 이미지에서 멀어졌다. 아마 올해 이후로는 이 단어를 쓰기 어려울 것이다.
 


역설적으로 올해 대선이야말로 한국에서 새정치가 얼마나 필요한지 사방에 알리는 선거였다. 외신이 “한국 민주화 이후 35년 역사상 가장 역겹다는 평가를 받는 선거”라고 비판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한편으로는 새정치에 대한 열망이 10년 전부터 그토록 높았는데, 어떻게 어느 대선 주자 한 사람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나 의아하기까지 하다.
 
혹시 우리 모두 새정치를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많은 사람이 막연히 새정치를 새로운 서비스 정도로 상상하는 것 같다. 기존 정치보다 더 빠르고, 더 편안하고, 더 가격 대비 성능비가 높은 뭔가라고. ‘낡은 정치는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새정치는 후련한 무엇이다.’ 나도 그렇게 여겼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기존의 한국 정치와 직업 정치인들은 갈아치워야 할 대상으로 보이게 된다. 20대 대선에서 양강 주자가 모두 국회의원 경력이 없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른바 ‘사이다’ 발언, 호통 발언을 잘하는 이들이 당내 경선에서 온화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후보보다 지지자들을 쉽게 얻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 덕분에 나는 새정치의 한 면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특정 그룹에게 시원한 발언은 반대 진영의 사람들에게는 어처구니가 없다. 모든 국민이 후련할 수 있는 정책은,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정치는 차라리 모든 국민으로부터 양보를 끌어내는 일에 가깝다. 새정치는 결코 통쾌하지 않을 것이다.
 
새정치는 편안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새정치가 젠더 갈등에서 비겁한 이득을 취하지 않고 그 한가운데 뛰어들기 바란다. 논쟁에서 지적인 용기를 북돋우고, 새로운 덕성과 질서를 제시하기를 바란다. 과정도, 결과물도 아마 매우 불편하리라. 모든 이에게 자기성찰을 요구할 터이므로.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정치 영역에 우리가 기대하는 일이다.
 
상당수 유권자에게 새정치는 ‘노력 대비 성능비’도 높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새정치가 실현된다면, 그 세상의 시민은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을 게다. 카리스마적인 정치 지도자가 음모론을 하나하나 물리쳐주는 덕분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새정치는 시민들에게 늘 공부하라고, 유튜브 시청은 공부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혹시 새정치는 권력구조 개편이나 대통령의 권한 축소를 뜻하는 걸까? 한데 ‘제왕적 대통령제가 정치 실패의 원인’이라는 식의 진단은 너무 단순하지 않나. 한국 대통령은 자리를 나눠주거나 누군가를 잡아넣을 때 힘이 세다. 반면 제도를 개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힘은 약한 것 같다. 그조차 분산해야 할까? 이것도 진지하게 공부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상상도를 그려볼수록 새정치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클릭 한 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신제품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운동이어야 한다는 점, 정치 신인 한 사람을 띄우는 데 이용돼선 안 된다는 점도 분명해진다. 광야에서 날아오는 초인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시민사회라는 단어도 최근 10년간 이미지가 참 안 좋아졌다. 그 단어가 어떻게 전유, 혹은 도용됐는지는 다음에 고민해보기로 하자.

장강명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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