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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매화가 나에게

신호철

신호철

피지도 않은 창가 매화나무를 보다 어제가 다르게 봄이 오고 있단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한 달 내에 나무는 꽃을 피울 것입니다. 흐드러지게 필 매화는 이층 나의 창문을 두드릴 테고, 바람에 진한 향기를 담고 창문을 열어 달라 속삭일 것입니다. 사실 매화가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무는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나무에서 뻗은 몇 개의 가지가 시들어 갔고 이내 그 옆의 가지들도 말라갔습니다. 이 집에 이사와 심은 작은 묘목이 자라 이제 나의 창가에까지 키를 키웠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나무를 잘라내야 하나 고민하다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잔가지를 정리하면서 둥그렇게 모양도 내 주었습니다. 모양이란 말이 쉽지 그야말로 사다리를 타고 곡예를 하듯이 나무의 구석 구석을 다듬었지요. 뿌리 근처에 흙도 덮어주고 가지에 약도 쳐주었습니다. 나무는 이듬해 작은 꽃망울 몇개만을 터뜨리며 몸을 추스리더니 그 이듬해 분홍빛이 도는 하얀 꽃을 내 창가에 토해 놓았습니다. 창가에 앉아 흐드러지게 필 매화를 생각하다 매화가 혹 내 마음을 알고 있나 싶어 나무를 쳐다 보고 있습니다. 나무 가지 끝마다 동그란 움이 터 있어 가까이 보니 나무가 온통 꽃망울을 피우려고 신열을 앓고 있습니다.
 
 
매화가 나에게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너는 창가에 매화를 피웠다
눈부시게 향기로운 봄날
허공에 부딪치는 눈송이처럼  
너는 창문을 두드렸다  
바람을 타고 흔들거리며
지긋한 시선을 창가에 던졌다
“가까이 와 나를 보세요”
말하기 전 들어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매화는 피고, 지었다
“가까이 오라 했잖아”
허리 굽혀 떨어진 너를 만지며
떨어진 말들을 주어 담는다  
“아직 늦지 않았어”
버려진,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말 되게 다시 짜 맞추는데
꿍꽝거리는 왼쪽 가슴 깊이
봄날이 나를 쿡 찌른다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아무리 부인해도 자기 중심적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원했다 가도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면 처음 가졌던 그 간절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은 양 표정을 바꾸어집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듯 뻗었던 두 손으로 이웃과 세상은 뒷전이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인 듯 제 것만 쓸어 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너와는 상관없는 나만의 천국입니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나라는 울타리에서 너라는 울타리 밖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는 경우를 점점 찾기 어렵습니다. 개인 주위를 넘어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들어갑니다. 나와 너와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나와 세상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을 향한 내 중심적 사고를 버리는 것은 일상을 움직여가는 바른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봄이오면 봄을 맞이하고 꽃이 피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과 고마움을 느끼며 사는 것이 성숙함이요 나이듦의 깊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라는데 매일의 삶 속에서 궁극적 타자(절대자)와의 만남은 삶을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합니다. 사람과 자연과의 깊은 호흡은 내게 주어진, 또 앞으로 주어질 시간과 공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인생도 피고 지고, 매화꽃도 피고 집니다. 다만 긴 공전과 짧은 자전의 축이 다를 뿐입니다. 매화나무에게 말 하기 전 나무가 말하는걸 듣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봄날 매화나무 속에 있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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