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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람의 하루

신호철

신호철

같은 눈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고 불투명하게 비쳐질지라도 믿어주고 힘을 실어주는 것. 갈등과 반목의 마음을 다잡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김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기에 같음이란 단어는 걸맞지 않게 들릴지도 모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자, 무엇이 다른가?  
 
급히 대답하는 자가 잘못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급한 말은 실수를 낳는다. 말이 씨가 된다. 행여 그 씨가 자라면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이때 씨의 의미는 긍정과 부정 모두 적용되지만 부정적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로 인하여 심한 갈등을 경험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길이 아니면 가질 말고 말이 아니면 탓하지 마라’는 속담을 기억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다. 수 없이 갈등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모두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말 말 말만 무성했다. 그리고 우리는 달랐다. 서로의 등을 지고 사랑했지만 시선은 다른 곳이었다. 길이 아닌 곳은 걷지 말하더니 우린 용감하게 비탈을 걸었다. 다름이 없는 건 봄이다. 어김 없는 것은 바람이다. 제 갈 길도 있고 내 갈 길도 있지만 난 바람의 길을 찬미한다. 말과 행동의 괴리가 없는, 겉과 속이 꽉 찬 봄을 밀고 오는 너. 바람은 사랑을 품은 진정한 고수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나를 민다
뒤돌아본다
바람의 손 발은 없다
바람이 구른다
동그랗게 어깨를 누른다
 
바람이 운다
소리내 우는 바람
바람의 성대가 떨린다
바람을 안을 수 없다
들꽃을 부둥켜 안고
바람은 오래도록 운다
 
해는 지는데
바람의 집은 멀다
부딪혀 오고 빠르게 간다
쉼 없는 자유
머물러 있기를 거부한
바람의 생이다
지금 여기
바람의 하루가 간다
 
 
오랜만에 데크에 앉아 뒷뜰을 바라보았다. 삼월의 중순에 한차례 눈이 내렸고 쌀쌀한 겨울 바람이 몰아친 후, 홀연히 따뜻한 봄날이 왔다. 4월에도 눈이 오고 이른 아침 서리가 내리는 시카고의 변덕스런 날씨. 진정한 봄을 맞으려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지칠 무렵 비로서 봄은 한발 한발 내게로 다가오곤 했다. 오늘같이 하늘하늘 바람이 불고 나도 모르게 스웨터를 걷어올리게 되는 날이 찿아 오면 봄을 마냥 즐긴다. 바람이 얼굴을 간지르며 벌써 저만치 달아난다. 뒤따라오는 오는 바람은 내 머리칼을 들어 올리고 같은 방향으로 줄행랑을 친다. 쉼이 없는 무한의 자유. “너 잠은 자고 다니니?”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또 바람이 불어 온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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