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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발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May I take a photo of your feet?”
 
해가 내리쬐는 허드슨 강가에 앉아 있다. 발을 앞으로 쭉 뻗고 물결을 응시하던 중이다. 카메라를 들고 지나가던 젊은 남자가 우리 앞에 멈춘다. 머뭇거리더니,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친구에게, 발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그는 구조가 이렇게 완벽한 발을 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 남자의 시선을 따라서 나도 친구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조리를 아무렇게나 걸친 발이다. 반바지 밑의 탄탄한 다리 끝에 갸름하지만 길지도 않고, 유연한 곡선을 가진 발이 보였다. 발가락이 짧고 옆으로 퍼져서 발가락 사이에 시원한 공간이 있었다.  
 
친구는 웃더니, 자세히 더 묻지도 않고 찍으라고 답한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란다. 원, 저렇게 경계가 없어서야, 아무거나 예스하는 친구가 못마땅했다. 그 남자는 자신이 발 전문가처럼 말하는데, 광고용 발 사진을 찍는 사람인지, 남의 신체 부위를 찍으러 다니는 사람인지, 나는 의심부터 하는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 내 발을 찍겠다고 한 것은 아니니, 내가 나설 일은 아니었다.  
 
오전에 강가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저녁 무렵 링컨센터로 갔다. 고즈넉한 어둠이 내린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걸려있다. 방금 퍼부은 소나기는 한낮의 열기를 가져갔다. 챙이 넓은 흰 모자를 쓴 여자와 헐렁한 긴 팔의 셔츠를 걸친 남자가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우리 앞에 자리를 잡는다. 8시쯤 시작하는 오페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일찌감치 와서 자리를 잡는다. 우리도 가져온 샌드위치와 과일을 꺼내며 피크닉에 합류했다. 뉴욕 도심 한복판, 별이 드문드문 박힌 밤하늘 밑에서, 축제라도 하듯이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대형 스크린에 템페스트의 첫 장면이 뜬다. 출렁이는 배와 바다가 보이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음악에 취해 들어간다.  
 
나는 별로 뭐에 취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와 남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 시간, 플라자에서 모인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묘한 경험을 했다. 어둑한 야외 광장에서 온 세상이 소리로만 이루어진 듯 음악에 심취한 선남선녀들처럼, 아마도 그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맹숭맹숭하던 내가 그날따라 왜 그렇게 음악에 빨려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오페라는 밤 10시가 지나서 끝났다. 친구의 맨해튼 아파트로 들어갔다. 소파 위에 책 한 권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니체 이거 읽어?” 책장을 후르르 넘겼는데, 이해 못 할 문장들로 가득했다. 친구는 책 속에 디오니소스 제전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고 말한다. 박카스 신, 주신이라고 불리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2500년 전, 그리스에서 행해졌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합창을 했다고 한다. 합창에 취하고 술에 몽롱해진 사람들이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물고 한 몸처럼 즐겼다고 한다.  
 
나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날 광장에서는 빠져들었다. 이게 무엇일까? 친구는 니체를 잘 모르지만 좋다고 말한다. 좋으면 쉽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 하긴 그러니까 따지지 않고, 영문도 모르면서 자신의 발을 선뜻 내주었나? 내 발이든 남의 발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친구다. 다음에 누가 내 발을 찍겠다고 하면, 어떡할까? 선뜻 내줄지는 잘 모르겠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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