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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미친녀’

“하루의 숙제를  
일찌감치 끝낸  
뿌듯함으로  
미친녀(美親女)가  
되는 기쁨을 만끽한다”
 
졸지에 미친 여자가 되어버렸다. 남편이 아침을 먹으며 내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걷다가 한 백인 여자가 날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지금 이 시간에 스파를 하는 여자가 있다며 손을 들어 뱅뱅돌리면서 ‘크레이지!’ 하더라. 아하 그게 바로 내 아내라고 하려다가 그녀가 무안할 것 같아서 그냥 웃고 왔지.”
 


오늘 아침 기온은 화씨 37도(섭씨 3도). LA에서 오래 살다보면 이 정도의 날씨에도 움츠리게 된다. 봄소식을 알리는 배꽃이 구름처럼 화사하게 피었고, 수선화도 활짝 피었건만 봄 아가씨는 기지개를 펴다가 주춤하고 있다.  
 
아침 7시는 내가 아침 운동으로 수영을 하는 시간이다. 옥외 수영장의 수증기가 목욕탕에서처럼 하얗게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다. 양쪽 발을 다 수술 받은 나는 서서 하는 운동이나 걷는 운동을 할 수 없다. 추위를 무릅쓰고 수영을 해야 하는 이유다. 자유형 30분, 평형은 팔을 안 쓰고 발차기만 해서 10분, 접영 10분. 모두 50분 동안 쉬지 않고 하면 천천히 하는 내 실력으로는 대략 1마일 정도의 거리가 된다.  
 
체온을 유지하고 근육을 이완하기 위해서 수영 전과 후에 자쿠지에서 스파를 잠시 하는데 울타리 밖에서 그 여자가 보았던 모양이다. 텀블러를 들고 밤에만 와서 와인을 홀짝거리며 분위기 있게 즐기던 자기 생각만 하고 꼭두새벽에 스파를 하는 나를 살짝 ‘미친녀’로 생각했나 보다.
 
한국에서 성장한 나는 미국에 와서야 수영을 배웠다. 엄한 아버지가 물가에 가는 것을 금지한 관계로 한여름에도 해수욕장이나 한강의 뚝섬에조차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 마음에 굴뚝 같은 부러움과 수영을 배우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다행히 젊은 날 클럽 수영장이 바로 앞인 집에서 10년을 사는 동안 수영을 혼자서 배웠다. 처음엔 사람이 없는 밤과 새벽에만 가서 물을 먹어가며 열심히 허우적거리는 동안 스스로 배우게 되었다.  
 
그때에 수영을 배워두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요긴하지 못했을 게다. 맥주병 신세를 못 면한 사람은 내게 수영을 잘한다고 하지만 내가 수영을 잘 하는 편은 못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내게 힘도 좋다고 혀를 내두른다. 내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헤엄치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건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수영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서두르거나 힘을 주어서 하면 얼마 못 가 숨이 턱에 달아 계속할 수 없다. 힘을 빼고 호흡을 잘 조절하면서 부유하는 힘에다 물살을 조금만 밀고 당기면 저절로 떠가게 되어 있다. 걷기로 말하면 조금 빨리 걷는 정도의 체력만 있으면 된다.
 
수영의 좋은 점은 누구나 잘 안다. 특히 내 경우에는 발에다 몸의 중력을 두지 않으니까 좋다. 유산소 운동으로는 첫손을 꼽아도 좋으리라. 호흡을 크게 해서 횡경막 운동이 되어 좋고 웬만해서는 다치거나 무리를 하지 않아서 좋다. 평형을 하면서 손을 쓰지 않고 발차기를 힘껏 하는 동안 허리와 고관절이 자주 삐그덕 거리던 증상이 확실히 개선되었다. 관절이 중력을 받지 않고 오히려 감압되면서도 자극을 받는 동안 상태가 좋아졌다고 믿는다.  
 
스무살만 넘겨도 좋겠다고 그 어머니가 바랐을 정도로 병약했다던 김형석 교수. 그가 50대에 수영을 배워서 오늘날 백수를 거뜬히 넘기고도 건재하신 것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도 계속할 수 있는 운동으로 수영이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오늘 아침엔 쌀쌀한 날씨에다 바람기까지 있어서 잠깐 동안에도 젖은 몸에 휘감기는 바람이 살을 에인다. 오늘같은 날은 걷는 사람들도 모자에 두꺼운 파카를 입었다. 장갑까지 낀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이 볼 때는 벌거벗고 물에 뛰어들고 바람 맞으며 밖에서 샤워를 하는 나를 보면 미친녀가 맞을 것 같다.  
 
해가 퍼진 후에 기온이 올라갈 때에 수영을 해도 되지만 꼭 아침에 하면서 미친녀가 되는 이유가 있다. 가만 있으면 저절로 굴러 내릴 수밖에 없는 비탈길에 서있는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낮시간으로 정하면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못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이유 불문 첫번째로 수영을 하기로 스스로 정해 놓았다.  
 
거추장스러운 보석이나 명품으로 단장하지 않아도, 공들여 서리앉은 머리와 골 깊은 주름을 감추지 않아도 좋다. 올곧은 자세와 건강하고 싱싱한 활력을 견지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자산이며 첫손 꼽을 아름다움이다. 이를 위해 나는 오늘도 기꺼이 미친녀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나 부러워했던 일 아니던가? 관리가 잘 되어있고 아름드리 팜트리가 둘러선 넓고 아름다운 수영장을 마치 나 개인의 전용 풀인 양 혼자서 즐기며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하루의 숙제를 일찌감치 끝낸 뿌듯함으로 미친녀(美親女)가 되는 기쁨을 만끽한다.

민유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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