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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누구도 낙오되지 말기를

 침대에게 몸으로 물을 주는 건, 그에게서 달콤한 봄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 내 주변엔 봄이 너무 많아 침대도 나에겐 봄이야, 그건 아마도 침대를 향한 나의 일방적인 편애일지도 모르겠어/침대는 해마다 겨울이 알려주는 장례습관 따위엔 관심 없어 꿈과 현실 사이에서 철없이 스프링을 쿨렁거려도 푸른 봄은 여전히 아지랑이처럼 오고 있을 테니까
 
-박재숙 시인의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부분
 
시 쓰기에서 상상력은 비유법과 더불어 큰 자산이 된다. 시적 상상력은 좋은 시를 만들어내는 바람과 햇볕 같다. 시인이 시적 대상과 마주칠 때 순발력 있게 동원되는 상상력은 시의 격을 달리한다.    
 
일상이라는 박제화 된 사고의 층위에 갇혀 보는 것만 보고 듣는 것만 이해하는 것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상상력을 통한 유추와 전복인데 이는 미적 지평을 확장하는데 큰 몫을 한다고 생각된다. 유연한 사유의 방식이 되어주며 시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중요하다.
 


이 시는 상상력이 발랄하다. 신춘문예 당선 시답다. 훈훈한 바람을 맞으며 깨금발을 하고 걸을 때처럼 읽는 기분이 가뿐하다. 봄과 침대라는 이질적인 대상이 하나의 이미지로 연계되었고 이미지의 결합으로 시적 감수성은 돋보인다. 봄의 탄력 있는 생명성과 침대가 지닌 충전과 회복의 이미지가 만나 시의 세계가 환하다.  
 
봄은 대지의 모공이 일제히 열리는 때, 잠자던 생명이 깨어나며 제 이름을 확인한다. 봄이 지닌 에너지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놀라운 힘이다. 검버섯 핀 노목의 어깨에서도 꽃을 피우고 소진되어 죽음에 이른 줄 알았던 둥치에서도 잎이 솟아 존재의 건재를 알린다.  
 
지친 몸을 받아주고, 숙면을 취하게 하고, 회복시켜 다시 삶의 터전으로 나갈 힘을 얻게 하는 침대, 날마다 봄을 탄생시키는 생의 궁극이라는 시적 인식은 상상력에 의해 얻어진 새로운 시선이리라.    
 
숙면만을 요구하며 눕던 침대가 수경정원 같아 보인다. 오늘 아침은 히아신스가 피어나 향기롭다. 잘 자고 난 아침의 산뜻함이 이와 다를 게 뭔가. 침대가 날마다 꽃을 피워 봄을 선사한다고 생각하면 불면 따위로 불안한 밤은 사라질 것이다.  
 
외형과 사정은 다 다르지만 산다는 것의 간절함에는 비슷비슷한 기쁨과 괴로움이 공존하게 마련인 것처럼 전혀 다른 계절이나 사물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성이 이해되고 이미지의 합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벌써 남쪽 마을에는 유채꽃이 피었고 홍매화가 향기를 드러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둔해진 미각도 혀끝의 기지개로 차츰 살아난다. 봄을 맞이한다는 건 하나의 기적을 보는 일처럼 놀라운 일이다. 굴렁쇠처럼 굴러가는 세월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부풀음 없이 봄을 맞는 일은 아무래도 봄에 미안한 일이다. 가슴을 뛰게 할 일이 뭐 있겠냐고 투덜대지만 이보다 더 가슴 두근대는 일이 어디 있을까.
 
이미 봄은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봄을 맞아 식탁에 앉히고 민들레 차를 달이며 봄이 지나온 사정을 들어야겠다. 살아 있으므로 살아갈 날들을 내일이라 부르며 희망을 가져볼 수 있듯이 이 봄은 팬데믹 시대 오미크론의 겨울을 견딘 우리들의 승전가다. 아마도 봄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창가에 스미는 햇볕처럼 따뜻하게 누구도 아프지 말라고, 누구도 낙오되지 말라고, 그리고 다 일어서라고.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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