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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나성의 ‘낭만시대’가 그립다

예술 동네에는 수많은 낭만적 신화, 전설이 전해온다. 그런 신화, 전설을 주제로 한 매력적 문학작품이나 영화도 많다.
 
20세기 전반 파리의 분위기가 대표적인 예다. 여러 분야 예술가들의 천국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며 현대예술의 새로운 세계를 힘차게 열어갔다. 그 엄청난 창조의 원동력은 문인, 화가, 연극인, 음악가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고 자극하고 배우는 열린 풍토에서 나온 것이다. 그저 술 마시고 취해서 떠들어대는 낭만에 그치지 않는, 아주 바람직한 어울림이다.  
 
그런 창조적이고 낭만적인 소통이 부럽다. 숱한 전설의 예술가들이 이때 탄생했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한 ‘이즘(-ism)’과 운동들이 이 무렵에 이루어져 현대예술의 골격이 형성되었다. 로트렉, 세잔, 피카소, 마티스, 루오, 샤갈, 모딜리아니, 아폴리네르, 장 콕도… 후기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 상징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미래파….
 
한국전쟁 직후 명동의 분위기도 그런 낭만시대였다고 전해진다. 파리도 그렇고, 명동도 그렇고, 참혹한 전쟁의 폐허, 가난의 틈바귀를 뚫고 창조의 꽃이 활짝 피어났으니 한층 더 신비롭다.
 
우리 이민사회에도 그런 창조적 낭만시대가 있었는가? 되돌아보니 우리 나성골에도 한때나마 그 비슷한 좋은 시절이 잠깐 있었다. 그런 낭만시대가 길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다.
 
1984년 LA올림픽을 전후로 한 80년대가 그런 시대였다. 미술가, 문인, 연극인, 음악인들이 흥겹게 어울리면서 젊은이들의 극단이 발족하고 소극장이 문을 열고, 미주한국문인협회를 비롯한 문인단체들이 발족해 문학행사를 열고 책을 발간하고, 전시회, 연극 공연, 음악회 등이 활발하게 열렸다.
 
그처럼 신바람 나는 어울림의 구심점은 나성골 한인마을 터줏대감인 화가 김봉태 선생이 운영하는 ‘갤러리 스코프’였다. 갤러리는 사람들이 오다가다 들르기 쉬운 한인마을 편리한 곳에 있었다. 그렇게 들러서 이야기꽃을 피웠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밥 먹고 한 잔 하는 모임으로 이어지곤 했다.
 
당시 자주 모이던 단골 술집은 3가의 동래파전, 6가의 야시, 그공간, 웨스턴 길의 이모집 등으로 해 저물어 출출해져서 한 바퀴 돌면 어디선가는 반드시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도 못 만나도, 아무데서나 한 잔 하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나타나곤 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마셔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슬그머니 술값을 내주고 가는 고마운 어른들이 있던 좋은 시절이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자주 술값을 내주던 분에게 감사한다.
 
즐겁게 먹고 마시고 떠들어대고, 들어서 괴롭고 불러서 목 아픈 노래를 신나게 불러대며 놀다 보면, 진지하고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이 멋지게 실천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전시회 오프닝 날, 음악회나 연극 공연이 있는 날, 문학행사나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저녁 등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여들어 떠들썩했다. 그렇게 나성 한인문화는 골격이 잡히고, 익어갔다. 감히 나성 낭만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가끔씩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술타령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 예술가들이 어울리고 소통하며 만들어내던 창조적 열기가 그리운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지금은 왜 그런 어울림이 안 되는 걸까? 코로나 핑계는 그만 대야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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