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이상한 ‘민국’의 왕위 찬탈 게임
우리 ‘민국’에는 비밀이 있다. 민국의 헌법을 국보로 보존할 심산인지 구중궁궐 푸른 기와집 비밀 금고에 꼭꼭 숨겨둔다는 거다. 헌법은 5년마다 치르는 민국 주민의 공무를 대행하는 대표 공무원 선거 때 반짝 빛을 보지만 투표용지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금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주민들은 이상한 마법에 걸려 헌법에 대한 기억도 잃는다. 대표 공무원은 뽑히자마자 자신을 성군·개혁군주·철인왕 등 온갖 미사여구로 ‘왕(王)’을 참칭하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는 소문이 돌 뿐 의미를 이해하는 주민은 없다고 한다.‘민국은 주권=통치권력이 국민에 영속해서 있고, 국민이 통치하는 국민의 나라다. 국민주권은 나눌 수도 없고 양도·위탁·매도가 불가하다’는 해설 역시 풍문으로 돌았다. 민국 역사서에 따르면 이 헌법 1조 조문은 1948년 민국을 건국할 때 만들어졌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반역자들이 있었던 아픈 민국의 전사(前史) 때문에 1조를 썼다. 이씨 왕조와 양반 귀족,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와 단절하고 구왕조와 식민지 시절의 모든 특권을 일소하는 결단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뽑힌 왕’에 기생한 측근의 부정선거와 두 번의 군사반란으로 민국 주민은 27년간 통치권력을 찬탈당하고 매일 군사독재자 사진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굴욕을 겪었다.
이제 민국 주민은 민주화 혁명을 통해 스스로 권력을 되찾은 뒤 35년동안 7번째 대표 공무원을 뽑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수상한 마법을 풀고 헌법에 대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지 아무도 모른다.
민국엔 이런 헌법 해석에 반대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니 선출된 권력(왕)이 아니냐’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주권자 국민 위에 그 무엇도 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통치권자 국민이 5년 계약직 대표 공무원을 뽑는 대선의 기준을 바꾸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대표 공무원부터 국민 기본권 신장에 복무하는 진짜 봉사자로 바꿀 수 있다. 민국은 국민권력을 사유화하고 약탈하는 ‘왕위 찬탈 게임’을 종식하고 그 너머로 나갈 수 있다. 대장동 비리 주범 김만배의 “형이 말이야”로 시작하는 녹취록에 좌우되는 코미디 대선도 끝내야 하지 않을까.
정효식 / 한국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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